"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은 언제나처럼"… 열정 다짐
엄마의 영향인지 나도 사실 목욕탕에만 가면 주변 할머니들 등을 밀어드리곤 한다. 내가 할머니 등을 밀어주는 것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정원이 착해”…라는 말을 듣고자? 하지만 의도하는 행동들은 아니다. 그냥 밀어드리고 싶다. 그런 생각은 들기도 한다. 내가 그동안 잘못한 일들도 씻겨져 나가는 듯 하다는…. 중요한 것은 하기 싫고 힘든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그냥 드는 것이다.
뮤지컬 배우로 서는 데도 엄마의 영향력은 컸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고 나설 때도 엄마는 반대는 커녕 적극적인 후원자가 돼주셨다. 당시 뮤지컬 배우가 된다는 나를 다들 의아하게 바라봤었다. 모두들 대학가려고 소위 목을 메고 있을 때에 나는 춤추고 노래한다고 하니…. 하지만 몇몇 시험점수에 내 인생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컸다.
결국 고3때 트럼펫으로 오디션에 합격하고 롯데월드 예술단에 들어가게 됐다. 처음엔 스페인춤을 추고 마칭밴드하는 퍼레이드쇼에 들어갔는데, 그땐 아주 ‘인기스타’였다. 그리고 얼마 뒤 뮤지컬예술단이 생기면서 나는 내 인생을 바꿀 오디션을 봤다.
최연소 단원으로 합격. 본격적인 나의 무대생활이 시작됐다.
예술단에서 1년반 동안은 교육만 받는 시간을 보냈다. 당시로선 최고의 전문배우 양성과정이었다. 외국에서 초빙한 강사들에게 온종일 교육을 받고 또 월급도 받았다. 배우로서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대학을 안나왔으니 그만큼 더 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악착같이 연습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뮤지컬에 대해 배우는 것도 노래부르는 것도 너무 좋았다. 연기를 통해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내가 꿈꾸던 일이었다. 솔직히 하기싫은 공부 안하는 것도 나에겐 좋은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의 발레를 배웠거나 연극영화과나 무용과 등의 전공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어서 실력면에서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열정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선배들은 나를 보고 ‘스폰지’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뭐든 가르쳐주면 쏙쏙 흡수하는 스폰지같다는 것이었다. 경주 오빠(뮤지컬배우 남경주)가 대학교 때 필기해둔 노트도 빌려다가 베껴가며 공부를 했다. 점점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 월급은 몽땅 레슨받는데 다 썼었다.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성악레슨도 받고, 국립발레단을 찾아가 레슨도 받고, 남들이 하루 24시간을 쓸 때, 나는 그걸 35시간으로 쓰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이른 새벽 연습장에 나와 혼자 탭댄스를 추다보면 어느새 온몸에 멍이 다 들어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나의 첫 무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6번 아가씨가 나의 역할이었다. 대사는 ‘가자, 아들레이드’ 단 한마디였다. 나는 그 대사를 몇백가지 버전으로 연습했었다. 석달의 연습을 끝내고 첫 공연날을 맞았다.
대사 한마디밖에 없는 단역이었지만 나는 첫무대가 끝난 후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 어떤 주인공보다 감격에 찬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었다. 이 첫무대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나의 첫 다짐과 열정을 잊지 말자. 몇십년 후에도. 그래, 무대만 좋아 사는 사람으로 평생 살아보자. 그걸 어기면 넌 배우가 아니야.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 무대에서 내 좌우명을 정했다.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은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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