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선교체험들을 보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원고 가운데 모두 8편을 선정,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10월 전교의 달을 맞아 교회와 신앙인들의 선교소명을 재확인하고, 감동적인 사연들을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일터는 선교, 성화의 장소
나는 음악학원을 운영하며 무한히 넓고 깊은 하느님 신비와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ㄱ음악원은 2005년 9일 기도 중에 주님께서 주신 나의 일터이다. 이 곳에 축복식이 있던 날 나는 감사기도와 함께 내 일터가 성화와 선교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렸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자가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사실 피아노를 배우는 대상은 고등학교 이하의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분의 외모는 여러 면(짧은 머리, 문신 등)에서 ‘조폭’처럼 험상궂어서 무섭기도 해 긴장되었지만 화살기도와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담을 시작했다.
그 분은 사업 실패 후 아내와 이혼하고, 자살도 시도했지만 실패했으며 처절한 현실을 잊어보고자 피아노를 배울 결심으로 가까운 학원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 중년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해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연주 솜씨가 늘어가는 기쁨도 컸지만 레슨 중 한마디씩 복음을 전했더니 그는 “피아노 레슨 받는 시간이 유일한 기쁨의 시간”이라며 마음의 평온을 찾아가는 듯 했다.
이렇게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 용기를 얻은 나는 “성당에 한번 나가 보실래요?”하면서 가톨릭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원장님, 제가 처음 학원 문을 들어섰을 때 성당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느님께서 저의 어려운 현실을 아시고 원장님을 만나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대답에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는데, 그는 성당 문턱에 3차례나 드나들었지만 인도자가 없어 도중에 포기하고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 그분은 여러 음악학원을 둘러보고 이 학원의 분위기를 보고 찾아온 것 같았다. 그는 성당에 나가는 것을 신중히 생각해보겠다 했고, 우리는 계속 피아노를 쳤다.
곧 저녁식사가 배달됐는데 배달 온 사람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식당 여주인이었다. 그녀에게 “저분을 성당에 인도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눈을 번쩍 뜨며 자기 남편도 인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몰랐던 가정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면서 사업에 실패하고 힘들어하는 남편이 편안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날 두 가정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거주지 가까운 성당에 아는 사람이 없어 송현성당에 있던 내 교적을 학원이 있는 대명성당으로 옮겼고 교리선생님과 봉사자를 소개받아 예비신자 환영식에 이 두 사람과 함께 참석했다.
그날 나는 내 소명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꼭 두 사람을, 두 가정을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주고 싶었다.
나는 다시 예비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학원에 강사를 더 쓰고 스케줄을 두 예비신자에게 맞추어 조정하고 함께 교리공부를 했다. 내가 인도한 두 예비신자도 최선을 다해주어 한 사람은 최고 출석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 요셉’, ‘이 루치아노’라는 세례명으로 두 사람은 다시 태어났다.
이 신영세자와 봉사자와 함께 9일 기도와 묵주기도를 함께 시작했고 틈틈이 연락을 해 혹여 냉담에 빠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나에게 일터는 선교의 장이다. 음악 상담을 하면서 쉽고 자연스럽게 종교 상담까지 연결시킨다. 하느님의 축복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니 영세를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냉담하지 않도록 돌보고, 냉담 중인 사람을 회두시키는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주변에는 냉담자가 너무나 많다. 이들이 천주교의 온기를 계속 느끼도록 옆에서 도와줄 친구가 필요하다. 또 천주교에 대해서 긍정적이면서도 어떤 계기를 찾지 못해 입문을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선교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주변을 둘러보고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말씀을 조금씩 전하다 보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오늘도 학원에 출근해서 여느 때처럼 성호경을 긋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예수성심께 내 학원을 봉헌하고 인터넷 매일 성경을 쓴다. 복음을 묵상하고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라는 기대감으로 설레는 하루를 시작한다.
박문화 엘리사벳(대구 대명본당)
◎엄마, 제가 해냈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딸아이의 학원에 자주 들른다. “엄마,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뭐냐. 피아노치고 나면 애들이 얼마나 목마르고 또 허기지겠느냐. 애들 간식은 이 엄마가 책임지마.” 이 소문이 학부모들에게까지 퍼졌다고 한다. 나는 용기를 얻어 딸아이에게 학부모 주소록을 청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중 한 집을 찾아갔다. 죄지은 사람처럼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큰 용기를 내어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하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나 ‘예수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하는 순간 용기가 생겼다. “피아노 할머니예요. 지나가는 길에….” “아이고,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 뵙고 인사드릴려고 했는데, 아무튼 잘 오셨어요.”
그러자 주님께서 내 입시울을 열어 주셨는지 입에서 청산유수같은 말이 줄줄이 나왔다. 그 학부모는 “마침 천주교회를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 나는 눈만 뜨면 주소록에 신경을 썼고, 하루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예전에 친정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천주교 신자라면 적어도 10명까지는 입교시키고 영세 후에는 냉담하지 않도록 끝까지 보살펴 주는 것이 네 사명인데…. 한 명만 더 입교시키는데 힘써 보려무나.” 사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복음을 전파하겠노라고 약속했던 내가 겨우 9명밖에 입교시키지 못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에 늘 마음 한 구석엔 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수년을 보낸 나 자신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있었다.
선교란 내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죄인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교란 기도와 희생과 물질적인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이뤄지는, 순교자의 나라로 들어가는 노력과 같지 않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선배 언니가 복지관에 가입하면 무엇이든 무료로 다 배울 수 있고 60~80대 노인들이 5000명이나 되니 복지관에 와서 구경도 하고 가입도 하라는 것이었다. 길잃은 양이 그 곳에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결국 복지관에 가입을 하고 곧바로 컴퓨터반에 들어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며 성탄절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컴퓨터반 짝꿍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목을 껴안고 무척 반가워했다. 그 짝꿍 아주머니는 여러가지로 생각 끝에 몇 달 전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갔는데, 자기는 결석도 많이 해서 다음 번에 세례받기로 하고 큰 딸은 12월 중순에 세례받는다고 했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눈물도 많아지는가 보다. 일년동안 짝꿍 아주머니와 말없는 정을 주고받은 것이 끝내 결실을 본 것이다. 딸이면 어떻고 그 어머니이면 또 어떠하리.
다행이 큰 딸이 먼저 세례받게 됐으니 내게는 결국 10명의 영혼들이 새로 탄생하여 주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신 엄마. 드디어 내가 10명을 채웠습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십자가를 보며 감사했다. 비록 내겐 당뇨와 심장질환으로 인한 작은 고통이 있을지라도 항상 힘을 주시는 아빠(예수님)와 엄마(성모님)가 계시니 이 세상 부러울 것도 없고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내 자식들과 남편이 건강하고 손자들에게까지 복을 주시어 건강하니 이 모든 것이 선교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책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자신을 낮추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여러 번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혼잣말로 씨익 웃었다. 백만불짜리 보물단지보다 더 귀한 문장이여.
찬양하나이다. 예수님, 성모님 영광 받으소서.
이현자 골롬바(서울 성내동본당)
◎사이버공간에서의 선교
과거에는 글을 모르면 문맹자라고 하였는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문명의 사회에서는 컴퓨터를 할 줄 모르면 컴맹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사회가 어제, 오늘이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컴퓨터가 우리의 일생생활과 뗄래야 뗄 수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혹은 각 가정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는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바쁜 삶에 매달리다보니 같은 형제지간이나 친척, 가족끼리도 한자리에 모여 앉아 대화나누기가 그리 쉽지 않을뿐더러 핵가족화 되면서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어 가정을 방문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본인은 1999년 초에 구청에서 실시하는 노인들을 위한 무료 컴퓨터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이버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이 사이버 세계에서는 참으로 많은 정보를 접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장소는 물론 국경까지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과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만날 수 있음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본인은 레지오 마리애를 20여 년(1983도 가입)동안 행동단원으로서 꾸준히 활동해 왔는데 컴퓨터를 배우고 나서 “아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여러 카페에 가입하여 성경말씀을 비롯하여 매일미사의 영성체 후 묵상, 서울 주보,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고인이 되신 철학박사 안병욱 명상록, 그밖에 우리 교회 내에서 발간되는 여러 간행물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발췌하여 거의 매일 거르지 않고 글을 올리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여러 카페에서 어째서 맨날 그런 글만 올리느냐는 질책도 받고 적지 않은 항의도 있었으나 꾸준히 쉬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이 세상을 정의로운 사회,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누룩과 소금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해왔다.
이런 일을 7년여 하다 보니 이제는 사이버 세계에서 많은 이들과 친교를 이루게 되었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게 되어 본인을 초청하는 카페가운데 건전한 곳만을 골라 가입한 곳이 현재는 약 30여 곳이 된다.
사이버 세계에서 글로만 대하다가 정기모임, 또는 번개팅으로 가끔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죽마고우와 같은 친근감을 느끼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한다.
본인은 심리상담 쪽에 공부를 해 심리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하였기에 개인 메일로 가슴에 담아둔 어려움을 흉허물 없이 털어놓으며 상담을 해오는 분들도 있고, 10여 년간을 냉담하다가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을 바꾸어 성당에 열심히 나가게 되는 형제자매님들도 여러분이 있다.
또 가까운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는 예비신자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선교는 바로 무한정 넓은 사이버 공간이라고 여겨진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 세상의 복음화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일에 힘닿는데 까지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여러분들께서도 사이버세계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두영 요한보스코(서울 상계2동본당)
◎적극적 관심, 대화로 선교
사례1. 혼인 조당 풀고 부군을 영세
25년 전 부산 모 초등학교 교감으로 있을 때 여교사 한 분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냉담 중에 있는 분으로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내겠다는 말을 하면서 종합결과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자꾸 피로를 느낀다고 했다.
다 듣고 나서 나는 사표는 내지 말고 60일 간은 쉴 수 있으니 병가를 얻어 집에서 푹 휴식을 취해보라고 조언을 하고 조심스럽게 신앙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대화 중에 혼인장애가 있음을 알고는 부군을 만나보고 싶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 후 부군되는 분을 만나서 교회법상 혼인장애를 설명하고 성당에서 관면 혼인성사를 받으면 부인의 신앙장애가 해소되고 따라서 건강도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흔쾌히 동의를 하기에 본당 신부님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내가 증인이 되어 관면 혼인성사를 받도록 하였다.
내친김에 부군에게 입교를 권면하였던 바 이 또한 순순히 받아들여 예비자 교리반에서 교리를 마치고 내가 대부를 서서 영세하게 되었다. 뒤에 자녀들도 모두 영세하여 성가정을 이루었다.
그 후 건강도 저절로 좋아져서 계속 교직에 종사하였다. 상담을 계기로 혼인장애를 풀고 부군까지 영세시켜 성가정을 이룬 사례로 오래도록 흐뭇한 추억으로 남는다.
사례2. 버스 안에서 시도한 선교
10년 전의 어느 주일날. 좌동성당에서 선교 강연을 마치고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40대의 어느 형제 한분이 좌석을 양보해주기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선교책(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을 전하니 나의 옷차림과 들고 있는 가방을 보고 목사님이냐고 묻기에 목사는 아니고 천주교 신자라고 답하여 신앙대화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졌다.
종교를 물으니 무종교라는 응답이었다. 선교책 표지를 보고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교황님이라는 말을 하면서 앞 자리에 앉은 부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쁘게 산다는 말과 부활을 믿기에 천주교는 기쁨의 종교 희망의 종교라는 말도 해주면서 천주교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책을 잘 읽어보겠다는 응답이었다.
앞 자리에 앉은 부인에게도 “자매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니 미소로써 응답이 있었다. 이와같이 버스 안에서 약 30분간 인격적인 만남에서 신앙대화가 이루어졌다. 도중에서 내리기에 “즐거운 나들이가 되기를 빕니다”라면서 미소로써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사례3. 씨 뿌린지 29년 뒤에 거둔 성과
35년 전의 일. 동료 여교사 한 분이 결혼을 하게 되어 이 때를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좋은 기회로 삼아 신약성경과 교리서를 선물하여 읽어보기를 권했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교를 맺으며 꾸준히 신앙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여교사와 딸 둘이 영세하였다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이제 부군이 영세할 차례. 약 4년이 지난 뒤 반가운 소식을 접하였다.
교리반에서 공부를 마치고 세례성사를 받게 되었다면서 대부를 서달라는 부탁을 기쁘게 수락하여 신친관계를 맺게 되었다.
씨를 뿌린 후 실로 29년만에 주님의 아들로 태어난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우락 클레멘스(부산 남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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