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이면 시끄런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뜹니다.
“신부님이시요? 주무실까봐 전화 못했다가 인자하요. 오늘 우리 동네 차오요.”
“네 어머님 갈꺼예요. 기다리세요.”
전화를 끊고 보니 ‘아니 지금 몇시야’ 10시30분 미사인데 지금은 새벽 5시. 성당차가 갈 것인데도 여름철 하루 해가 너무 긴 탓인지 주일만 되면 저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보십니다. 이곳은 성당을 중심으로 6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봉고차는 한 대 뿐인지라 먼저 오시는 분들은 한 시간 이상을 성당에서 기도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기다리십니다. 미사 직전에 바쁘게 도착하는 교우분들은 거의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부임한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시골성당이긴 하지만 헌금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서 헌금을 늘려보나 고민을 했습니다. ‘1000원짜리만 있어서 천주교라는 이야기를 할까? 각 종교단체를 전전하던 할머니가 다시 천주교로 돌아와 천주교가 제일 싸게 먹힌다고 했던 이야기를 할까?’
결국 고민 끝에 “예수님께서 왜 팬티만 입고 계시는 줄 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1000원가지고 일주일 살려니 옷 사 입을 돈이 없어서 그런답니다.”
헌금이 조금 늘긴 했습니다만 정말 없어서 못 내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십니다. 1년 정도 살다보니 가정 형편도 다 알고, 자식이 뭐 하는지 할머니들이 한 달에 얼마가 정부에서 나오고 얼마 용돈 쓰시는지도 알게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에 헌금이야기는 또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긴 특별히 부자도 없고, 땅을 많이 가진 사람도 없으며, 혼자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분도 없습니다. 그저 다 비슷비슷하고 도시로 떠난 자녀들 자랑이나 하면서 다 그만큼씩 살아가십니다. 그래도 다들 집에 걸린 사진들은 학위받으며 찍은 자식들 사진이며, 손주들 사진들이 즐비합니다. 명절 자식들의 방문을 맞이해 이것저것 비닐 포장지에 한 해의 수확을 챙겨 놓습니다. 추운 겨울을 전기장판 하나로 나시면서도 자식들이 온다고 하거나 반모임이라도 하면 이틀 전부터 보일러를 켜고 기다립니다. 겨울철 할머니들 집은 너무 춥기에 매일 마을 회관에 모여 하루종일 같이 나누며 사는 모습은 신앙이 없어도 다 공동체 한가족 같습니다.
아침저녁 제법 쌀쌀 합니다. 또 겨울이 다가옵니다. 이 곳에선 20년 된 사제관이 가장 좋은 집이고, 겨울 기름보일러로 따뜻할 정도로 난방 하는 곳도 사제관뿐인 것 같습니다. 전주교구 선배신부님은 할머니들이 난방하지 않는데 당신도 할 수 없다면서 겨울 내 오리털 파카와 내복을 입고 사제관에서 지내는 것을 봤습니다만 저는 아직 그 정도 내공은 없나봅니다. 하지만 보일러를 켤 때마다 왠지 죄짓는 마음은 버릴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 많이 헌금하지 않아도 성당 잘 돌아가는 방법은 없나요?
이호 신부 (광주대교구 사거리본당 주임)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