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이 '삶의 포기' 막을 수 있다
오늘날 ‘세상살이’의 심각한 문제, ‘자살’을 미래적 ‘복음살이’ 관점에서 접근한 대규모 심포지엄이 마련됐다. 수원교구는 교구 사제단과 신자 11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10월 4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사랑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교구 복음화국(국장 문희종 신부)이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에선 이용훈 주교의 기조강연에 이어 김종임 교수(충남대), 강혁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이계상(인성교육담당관), 한승희(표현예술심리상담사)씨 등이 각각 발표했다. 자살 문제의 심각성과 그 대안을 살펴보는 계기가 된 이번 심포지엄 발제자들의 발표를 주축으로 ‘자살 없는 복음살이’를 희망해본다.
■ 떠나는 사람들
44분에 1명, 매일 33명, 연간 1만2047명.
지난 2005년 한 해동안 스스로 ‘선택’해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는 5년 전인 2000년(6460명)에 비해 2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살자는 2001년 6933명에서 2002년 8631명으로 늘어났고, 이어 2004년에는 1만1523명으로 급증하는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용훈 주교는 이번 심포지엄 기조강연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5년 7776명으로 2000년 1만1844명 보다 34% 줄었는데, 2005년 자살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보다 55%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자살의 급속한 증가는 우리나라에 불명예스런 또 하나의 훈장을 안겨주고 있다. 한국은 1996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 12.9명이었는데 20004년 24.9명으로 크게 증가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중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5년 한국인 10대 사망원인 중 자살이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이주교는 “자살은 사회를 위해 한창 일해야 할 청년층과 사회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년층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회적 질병으로서 절박하게 대책을 세워야 하는 현안”이라고 말했다.
■ 자살의 원인과 대안
우리 사회는 실존적 문제로 자살을 하는 유럽과 달리 질병의 고통, 경제적 삶의 빈곤과 비관, 파산 등이 자살 원인의 70%를 차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최근에는 빈곤, 실직, 불황, 사업파산, 인간관계의 불화, 배우자의 사별, 사회적 고독, 학교성적저하, 학교폭력, 소년기 때의 신체적 학대와 성적(性的) 학대, 사회적 모욕, 정치생명 소멸 등의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에 있어서 자살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김종임 교수(충남대)는 “과거에 비해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이 증가되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첫째로 근본적인 생명존중에 대한 사회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살의 원인이 각 상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생명 경시 풍조가 자살자로 하여금 쉽게 생명을 훼손하도록 판단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살 예방이라는 말보다 생명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가정과 성당, 학교,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생명에 대해 애틋하고 안쓰럽고 귀하고 감사하는 가슴, 벅찬 떨림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에게는 비난, 비교, 꾸지람을 경험하게 하기보다 전폭적인 사랑을 주고, 부족함과 실수로 얼룩진 그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뿌리내리고 성장하고 있음을, 소중한 생명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곳이 ‘가정’. 김교수는 “부모는 자녀를 격려하고 신뢰하여야 하며 부부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더욱 사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며 “여러 기관에서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전 생애를 걸쳐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태도가 뼈 속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이주교는 “국가는 무엇보다도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고용 극대화로 합리적인 금융체제를 정착시켜 경제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그 안정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며 “지역사회도 자살 예방을 위한 전문센터를 만들어 사회안전망을 가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강혁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급증하는 자살 문제에 대해 ▲자살 예방을 위한 양심교육의 필요성 ▲그리스도교의 영성 및 사랑을 통한 사목상담 ▲자살자 유족을 위한 배려 ▲자살방지를 위한 사회복지 지원 협조 시스템 등을 강조했다.
■ 이제는 생명으로
강신부는 더 나아가 “자살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성향에 대항하는 범죄이고 살인이자 공동체와 그 종속인들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범죄”라고 말했다. 인간의 생명은 창조된 세계안에 있으며 그 가치를 누리는 것이므로 창조세계의 법칙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육체와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관리와 사용권만을 가질 뿐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 의하면 자살은 한 인간의 독립성과 인간 사회를 배반하는 극도의 죄악이다. 교리서는 더 나아가 자살자는 더 큰 인격적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교회내 전문가들은 해결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용훈 주교는 “자살을 예방하고 근절하는 유일한 방도는 가족, 이웃, 벗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사랑”이라며 “이웃의 빈곤, 고뇌, 질병, 아픔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평화와 정의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주권자는 ‘하느님’어떤 이유로도 정당화안돼
■ 자살에 대한 교회 입장
교회는 자살을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제 5계명을 거스르는 중죄라고 가르쳐 왔다. 하느님만이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기 때문이다(신명 32, 39 참조).
사실 우린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로마 14, 7∼8)이다. 따라서 자살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아무리 그 동기가 순수하고 고상한 것이라 하여도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큰 죄악이다(가톨릭 교리서 2280~2282항 참조).
교회가 자살을 단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최고 주권자는 하느님이며, 인간은 생명의 관리자이지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인간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보존할 의무가 있다.
나아가 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도 위배되며, 올바른 자기 사랑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또 자살은 이웃 사랑도 어기는 것이다. 좁게는 가족과, 넓게는 국가와 인류 사회와 맺고 있는 연대 관계를 부당하게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자살자가 죽기 전에 회개의 표시가 없었다면 교회 예식으로 장례를 지내지 못했었다. 교회묘지 이용도 허락하지 않았다(구 교회법전 1240조 참조). 하지만 이같은 경향은 현대로 오면서 달라졌다. 교회는 이제 자살자라고 해서 그를 영원히 단죄 받은 죄인이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80~2283항, 현 교회법전 1184조 참조).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해설이 지침서 제 130조 장사(葬事)에 대한 해설에서 “사제는 공개적인 교회 장례식이 거부되는 자를 위해서라도 ‘비공개적’으로 위령미사를 봉헌해 줄 수 있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이 ‘비공개적인 위령미사 허용’을 두고 마치 자살을 하더라도 교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된다.
자살은 자신을 사랑하고 완성시켜 나가야 할 인간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자살 행위는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상의 원칙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자살 관련 교회내 상담 02-752-4411~3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나눔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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