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내 공연은 꼭 보러 와준다. 공연이 끝난 후 내가 ‘잘 봤어?’하고 손을 잡으면 평상시 집에서 보던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지 손을 살짝 떤다. 그때가 나는 가장 행복하다.
‘아, 아직도 내가 이 사람한테 배우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면, 집에서나 무대에서나 똑같은 여자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면 그땐 정말 내가 배우로서 물러나야할 때일지도 모른다.
내가 늘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 쏟으며 공연할 수 있는 건 역시 사랑하는 가족들 덕분이다. 특히 남편 도움이 크다. 남편은 늘 나를 좋은 배우로 먼저 생각해준다.
보통 아무리 배우로 뛰어난 역량이 있더라도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연기를 잘 하기 어렵다. 진정 밝은 모습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공연이라는 것은 시간과 너무 비례해서 보여지는 일이다. 공연 당일만 시간을 할애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수많은 연습시간 등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섭섭할 수 있는 직업인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늘 이 시대 모든 관객을 위한 사람이라고 격려해준다. 항상 좋은 아내, 좋은 엄마보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더 노력하라고 말해준다.
작은 불편함이나 섭섭함 같은 것들은 자기가 다 감당하겠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그렇기에 무대에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결혼 초 남편은 시댁에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으며 일가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원씨가 집안의 행사나 명절 때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이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배우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결혼한지 벌써 10년에 접어들었다. 공연 때문에 우리는 결혼식 후 곧바로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한 우리는 서울에 머물며 서로를 믿어주기, 거짓말하지 않기를 약속했었다.
1998년, 그때만해도 사실 나는 결혼에 관심이 없던 때였다. 한창 무대 욕심도 많을 때고 결혼은 내게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남편은 친구 소개로 만났었는데 지금도 정말 결혼을 하길 잘 한 것 같다.
결혼을 한 후 나는 공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남편은 나 이상으로 무대와 뮤지컬을 사랑한다. 어쩌면 내가 뮤지컬 배우여서 사랑했을 수도 있다.
나에게 남편의 어떤 면이 가장 끌렸냐고 물을 때면 나는 우선 다정한 것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우리 아버지는 소위 남자다운 분이셨다. ‘자, 밥먹어’ ‘사랑한다’…. 한마디 무뚝뚝하게 딱 내뱉으면 끝났다. 여타 여자들은 그렇게 남자다운 사람을 멋지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다정다감한 사람이 좋다.
‘너 내 맘 알지?’라고 한마디로 끝내는 대화는 너무 싫었다. 예를 들어 ‘저녁은 어떤 걸로 먹었어?’라고 일상의 안부도 묻고, 예쁘면 예쁘다고 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어릴 땐 나는 외국사람과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남편도 한국사람 치고는 편지도 참 잘 쓰고 다정한 면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특히 남편은 부부가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최근 남편은 서울 명동성당 혼인강좌 강사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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