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는 교회의 심장부인 바티칸시국이 한 가운데 자리한 곳으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로 친숙합니다. 비행기로 13시간 넘게 날아야 닿을 수 있는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익숙하진 않지만, 누구나 한번쯤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한국을 만났습니다. 보다 성숙한 미래 한국교회를 위해 학업에 매진하며 보편교회의 중심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드높이는 한국,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습니다.
[로마 이승환 기자]
한국-보편교회 잇는 구심점
아시아 사제 등 40여 명 거주
전교지역 신학원으로는 유일
열악한 각국 교회 간접지원
로마 시내에서 승용차로 20여 분.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PONTIFICIO COLLEGIO COREANO)’은 로마 서쪽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수 백 년 된 건물과 현대의 이기(利器)가 공존해 혼란스럽기까지 했던 시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정문을 지나 신학원 안으로 들어서면 지난 해 정진석 추기경이 식수한 1000년된 올리브나무가 반긴다. 마당 한 쪽에는 성모상도 자리해 있고 박해 당시 순교자들의 목에 씌워졌던 칼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아담한 두 동의 신학원 건물과 조형물, 깔끔한 조경이 조화를 이뤄 마치 한적한 피정의 집에 온 듯하다.
신학원 담을 마주한 널따란 공간은 2002년 이름 지어진 ‘한국순교성인광장(Largo Santi Martiri Coreani)’이다. 김대건 성인상을 비롯해 정하상 성인과 최양업 신부, 강완숙 골롬바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마치 한국 성지에 온 느낌이다. 로마 지도에 광장 이름이 등재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작은 한국교회를 보는 것 같은 바깥 풍경을 뒤로 하고 신학원 안으로 들어섰다. 점심식사를 마친 신부들의 기도 소리가 들린다.
로마에는 40여 개 신학원이 있지만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의 전교지역 중 신학원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때문에 한인신학원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자리한 한국교회의 거점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와 문화를 로마 속에서 드러내는 장소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인신학원에는 현재 40여 명의 신부들이 거주하고 있다. 오전 6시45분에 일어나 미사를 봉헌하고 점심·저녁식사 전 양심성찰과 더불어 삼종기도를 봉헌하는 빡빡한 일과는 신학교와 다름없다. 신부들의 학문 연구와 영성수련의 장임을 짐작케 한다.
더불어 한인신학원은 아시아·아프리카 등 한국교회 보다 사정이 열악한 세계 여러 교회에 간접적으로 힘을 보탤 뿐 아니라 해당 나라 교회와 소통하는 가교(架橋)역할도 한다. 40명의 신부 중 나이지리아, 케냐, 인도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온 신부는 15명. 이 중에는 서울대교구의 장학금을 받는 신부도 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탈바꿈은 이곳에서도 실천되고 있다.
3년째 한인신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요한네스 술리스(Yohanes Sulis) 신부는 “한국 신부님들과 함께 밥 먹고 청소하고 공동체 미사를 봉헌하며 형제라는 연대성과 유대감을 느낀다. 한국 신부님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생소했던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해 깊이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올 2월에는 한인신학원 개원 후 처음으로 주교가 탄생했다. 신학원에서 공부하던 인도의 존 물라키라(John Moolachira) 신부가 인도 디푸(Diphu) 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것. 올 4월 인도에서 열린 주교 서품식에는 한인신학원 원장 김종수 신부가 참석해 축하인사를 전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신부들이 식당 청소와 설거지로 분주하다. 여섯 수도자가 살림을 도맡지만 식사 후 일손을 돕는 것도 신학원 가족들의 일과 중 하나다. 하지만 떠들썩한 것도 잠시. 신학원이 다시 고요해졌다.
조용함만큼, 혹은 한국과의 거리만큼이나 한인신학원의 오늘은 한국교회와는 멀리 떨어진 듯하다. 하지만 10년이 채 안된 짧은 시간동안 한인신학원은 한국교회와 교황청 그리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잇는 다리로 자리매김해왔다. 단순히 유학 신부들의 기숙사가 아닌, 겉모습 뿐 아니라 속내까지도 한국교회임을 보편교회에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로마에 가면 꼭 한번 한인신학원에 들러보기를, 로마 속 한국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아보길 권한다.
로마 한인신학원은?
한국주교회의 발의로 1990년 9월 20일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동료순교자 대축일에 창설된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은 2000년 10월 1일 개원했으며 이듬해 3월에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한인신학원은 한국주교회의 직속 교육기관이면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소속의 자치신학원이다. 2003년부터 서울대교구가 주교회의로부터 운영을 위탁 받아 관리하고 있다. 주교회의 연락사무소를 겸하고 있으며 로마 한인본당이 매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한국순교자성당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2002년에는 신학원 앞에 한국순교성인광장도 들어섰다.
한국문화원이 없는 이탈리아에서 한인신학원은 한국과 한국교회를 대내외에 알리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에는 한국과 교황청의 공식 외교관계 수립 40주년 축하행사가, 지난 해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서임 축하식도 열렸다.
한인신학원은 로마 국제공항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로마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Via degli Aldobrandeschi 124)해, 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나 성지순례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설명
▶로마 서쪽 외곽에 자리한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아담한 두 동의 신학원 건물과 박해 당시 순교자들의 목에 씌워졌던 칼을 형상화한 조형물, 깔끔한 조경이 조화를 이뤄 한적한 피정의 집에 온 듯 하다.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에 거주하는 사제들이 식사전 기도를 하고 있다. 이 곳은 6명의 수도자가 살림을 도맡지만 식사 후에는 신학원 가족 모두가 일손을 돕는다.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은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온 신부 15명을 포함한 40여 명의 사제가 함께 거주하며 연대성과 유대감 속에 한국교회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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