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병영일기’를 통해 군종사제들이 군 복음화 현장에서 겪는 희로애락과 그곳에서 건져낸 진솔한 신앙고백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아울러 그들이 내딛는 걸음 속에서 복음화의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합니다.
누구나 70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아무리 낙하산이 늘 펴진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다고는 하지만, 뛰어나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비행기에서 강하를 앞두고 있을 때 느낌은 흡사 고해소 앞에선 냉담자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까요? 그 불안하고 두려운 느낌. 언제 뛰어도 강하는 푸근한 놀이는 아닙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군종교구 ‘성레오(특전사)’ 성당에 있는 오정형 요한 신부입니다.
레오 성당은 ‘공수부대’로 더 잘 알려진 특전사 성당입니다. 납작한 검은 베레(공수 모자)를 쓴 시꺼먼 공수부대원들을 한 번씩은 보셨을 겁니다.
제가 공수부대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신부님도 훈련 받나요?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뛰나요? 하고 묻습니다. 대부분 제 얼굴을 보고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 하에 묻지만, 실제로 특전사는 전입 오는 모든 장병들이 의무적으로 공수(낙하산) 훈련을 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저도 작년 여름에 이곳으로 와서 버티고 버티다가 11월에 겨우 훈련을 받았습니다.
공수 훈련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군대 3번 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뛰고 구르고 뛰고 구르고를 반복하는데 평소 안 쓰던 근육만을 너무 많이 쓴 관계로 온몸에 멍이 들어서 평생 붙일 파스를 다 붙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힘든 훈련 끝에 첫 강하를 할 때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높고 넓은 창공을 향해서 힘껏 뛰쳐나갈 때의 짜릿함, 낙하산이 무사히 펴지고 두 발을 띄운 채 창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은 그간의 훈련의 어려움을 몽땅 잊도록 해 줬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무척 고요하고 평온했었습니다. 특별한 자유를 느끼게 해 줍니다. 그 재미에 빠져서 지내다보니 벌써 11회 강하를 마친 상태입니다. 물론 이건 제가 있는 특전사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숫자입니다. 거의가 수 백회 이상, 천 회는 뛰어야지 뛰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군인들 훈련할 때 찾아가서 초코파이 주면서 위문하는 거랑 경기도 광주에 있는 교육단에 가서 공수부대원이 되기 위해 교육 받는 후보생들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정예 특전 용사가 되기 위해 힘든 훈련을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기도 하고 한 번씩은 검고 마른 얼굴에 안쓰럽기도 합니다.
사실 공수부대하면 많은 분들이 5.18의 아픈 기억을 함께 떠올리지요. 얼마 전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도 보면 공수부대 사람들이 무시무시하게 나오는 게 사실이구요. 한국 군대의 가장 아픈 기억이 광주항쟁 관련 기억이고 그 중앙에 제가 있는 공수부대가 서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불행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도 이들은 가장 힘든 훈련을 하면서 준비하다가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목숨을 바쳐 사지로 먼저 뛰어듭니다.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특전사 군인들은 국가가 내린 명령에 죽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안중근 의사께서 말씀하신 ‘위국헌신’의 기초가 되는 군인의 본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일도 저는 공수 훈련을 받는 교육생들과 함께 동참강하를 하러 갑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저와 같은 신세에 있는 두 분 목사님의 첫 강하에 함께 하는 거라 더 신이 납니다. 시작할 때 겁을 잔뜩 줄 생각입니다.
오정형 신부(군종교구 성레오본당 주임)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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