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중심 도시답게 이탈리아 로마에는 현재 200명이 넘는 한국교회 성직·수도자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길게는 40년 넘게 머물며 이제는 한국말이 서툰 수도자도 있고 막 유학길에 올라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 성직자도 있습니다.
로마에서 한국, 한국교회를 알리며 살아가고 있는 성직·수도자 중 세 명을 만났습니다.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김종수 신부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교황청립 대학 총장이 된 장향주 수녀, 그리고 교황청립 성 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 김종강 신부입니다.
[로마 이승환 기자]
“더 많은 한국인 보편교회서 봉사해야”
◎김종수 신부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로마에 신학원이 있는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필리핀뿐입니다. 게다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이 관할하는 전교지역 중에는 유일한 신학원입니다.”
지난 2006년, 5년 임기의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으로 부임한 김종수 신부는 신학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편교회에서 차지하는 한국교회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김신부가 내다보는 신학원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학원은 한국과 한국교회가 로마에 갖고 있는 유일한 집입니다. 신학원이 한국교회의 모습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경험을 나누는 장이 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겠죠. 우리를 알리는 행사가 자주 열릴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김신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성당뿐이고 한인본당 차원의 행사도 일 년에 두어 번만 열리는 상황이어서 어려움은 있다”면서도 “신학원과 이웃한 지역 이탈리아 사람들을 초대해 유대를 맺는 등 작은 행사라도 내실 있게 치루며 신학원을 알리는 데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인신학원이 없던 시절 로마에서 공부한 김신부가 후배신부들을 바라보는 느낌도 남다르다. 김신부는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고 그만큼 신부님들도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런 책임감은 한국교회보다 상황이 열악한 아시아, 아프리카 신부들과 신학원에 함께 살면서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국 신부들이 머물 공간도 부족한데 외국 신부들을 신학원에서 받아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하지만 외국 신부들이 이곳에 머물며 한국교회를 잘 알게 되고 그들이 귀국해서 한국교회를 세계 각국에 전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청과 한국교회를 잇는 한국 주교회의 연락사무소 책임자를 겸하고 있는 김신부는 교회의 중심인 교황청과 세계교회의 핵심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의견도 내비쳤다.
“한국교회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우리 스스로 이야기하고 또 세계교회도 인정하지만 정작 교황청에서 활약하는 한국 사람은 드문 형편입니다. 보다 많은 한국교회 인재들이 교회의 중심에서 세계교회를 위해 봉사한다면 그것이 곧 한국, 한국인, 한국교회를 세계교회에 알리는 뜻 깊은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교회 보는 시각 넓히는 기회”
◎김종강 신부(교황청립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
부원장이라고 하면 왠지 권위적이고 무서운, 소설 속 뿔테안경 낀 ‘사감’이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한국적인 선입견이었나 보다. 큰 일 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는 됐다며 커피를 내오는 김종강 신부(청주교구)의 모습은 한국식 부원장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다.
“저는 그저 신부님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아주 조금 할 뿐이에요. 신부님들 뒷바라지 해 주고 어려울 때 이야기 나누는 친구역할이죠.”
그래도 ‘교황청의 녹을 먹는다’는 농담 아닌 농담처럼 김신부는 교황청립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이하 신학원)의 부원장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 60개국 190여 명의 유학 신부들이 생활하는 이곳에서 한국 신부가 부원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2001년 로마로 유학 온 김신부는 현재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두 명의 부원장이 있는 데 저는 신학원 도서관을 관리하고 신부님들의 건강을 챙기는 역할을 합니다.”
신학원 신부들의 소소한 일까지 챙기고 살펴야 하는 부원장직을 김신부가 맡게 된 것은 신부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생활도 모범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그래서인지 2004년 9월 부원장으로 임명된 김신부는 올 9월 3년 임기의 부원장으로 다시 임명됐다.
“음식이나 문화의 차이로 건강이 좋지 않은 신부들이 많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상담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건강히 지낼 수 있도록 돕고 있죠.”
부원장이라는 직책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다른 신부들처럼 몇 개의 국어에 능숙한 것도 아니고 자신도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이곳 신부님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선교지역에서 오셨습니다.
교회의 오지에서 핍박받는 민족들이죠. 그들의 경험을 듣고 나누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축복입니다. 어쩌면 부원장이라는 것 때문에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곳이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훈련장소’라고 생각한다는 김신부는 앞으로도 배우는 자세로 일하겠다고 말한다.
아울러 세계교회를 보는 눈이 더욱 넓어질 수 있는 기회를 자신 뿐 아니라 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가졌으면 하는 것도 조심스런 바람이라고 전한다.
“한국인으로, 주님의 딸로 살아갑니다”
◎장향주 수녀(교황청립 아욱실리움 교육대학 총장)
1964년. 열아홉 어린 나이에 이탈리아 땅을 밟은 한 수련자가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오로지 ‘하느님 뜻대로’라는 생각으로 공부하겠다고, 순명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수도자는 한국인 첫 교황청립 대학 총장이 됐다.
“제가 하느님께 또 수도회에 많이 받았으니 또 그만큼 내놓아야겠지요. 결국 이 자리는 봉사해야할 희생의 자리라고 생각해요.”
장향주 수녀는 살레시오수녀회가 운영하는 교황청립 아욱실리움 교육대학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가고 있다. 1972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대학 교수가 됐고 1980년에는 비교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두 차례 부총장을 역임한 장수녀는 지난 2004년 90여 명의 교수들을 이끌며 350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 사도직의 중추로 양성하는 대학의 책임을 맡았다.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으로서도 처음이다. 올 9월에는 3년 임기 총장에 재임됐다.
“60여 개 나라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공부하는 만큼 외국인 교수도 필요했기 때문이겠죠. 한국인 처음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말은 부담스럽습니다. 오로지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제게 맡겨진 소임을 다 할 뿐이죠.”
이탈리아에서만 40년 생활.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 겪은 어려움은 없었는지, 또 장수녀가 느끼는 한국, 한국인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40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사람들은 저를 중국이나 일본사람으로만 생각했어요.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죠. 차별은 없었지만 그게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달라요. 국제행사에 나가 수도회를 대표해 발표하거나 강의 할 때도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장수녀는 2004년부터 ‘재 로마 한국 여성수도자 모임’ 회장도 맡고 있다. 로마에서 유학하는 30여 개 수도회 100여 명의 수녀들은 매년 11월 모임을 갖는다. 유학생활의 어려움도 토로하고 정보도 교환하며 친교를 다지는 자리다.
장수녀는 “한국교회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 깊다”고 이야기한다. 또 모임 때 식사를 손수 마련해주는 로마 한인본당 공동체의 모습도 4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로마 속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깊이 체험하며 지낸다고 말한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또 하느님이 나를 이곳에 있도록 안배하셨구나라는 것도요. 남은 삶도 한국인으로서 또 주님의 딸로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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