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먹을거리 왔습니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계절 가을의 또 다른 이름은 ‘수확의 계절’이다. 한 해 동안 농부들이 땀과 노력으로 키운 과일과 곡식들이 도시로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갓 재배된 과일과 곡식들이 무사히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꼭 손을 거쳐야 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전역에 농산물을 배송하며 도농생명공동체운동을 실천하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물류국 배송담당자가 그들.
세 번째 현장 이야기는 유기농산물 배송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물류국의 분주한 아침
8시30분. 출근준비가 한창인 시간이지만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물류국의 아침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다.
배송담당자 강우성(스테파노·38·인천 계원동본당)씨는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들어서자마자 무엇인가를 확인한다. 다름 아닌 내일 배송스케줄이다. 물류국은 소비자에게 3일 전 주문을 확인하고 배송 전날 스케줄을 짜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는 하루를 먼저 살아요. 아침에 출근하면 바로 내일 배송 스케줄을 확인하거든요. 이 일의 묘미이기도 하죠.”
내일 배송 스케줄을 확인한 강씨는 다시 사무실을 나선다. 본격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인근에 있는 물류창고로 향한다. 창고에는 각종 농산물과 과일, 가공품들이 배송을 기다리며 나란히 놓여있다.
강씨는 오늘 배송 리스트를 꼼꼼히 확인하며 소비자들에게 갈 물품을 박스에 하나하나 담기 시작한다. 일손이 부족한 물류국에서는 배송담당자들이 물품준비부터 배송까지 담당해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유기농기업과는 달라요. 부족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자연과 땅을 살리기 위한 일이잖아요. 다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갑자기 물류 창고에 긴장감이 돈다. 아침에 도착하기로 했던 농산물이 배송직전까지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배송 당일에야 물품이 입고되어 이 같이 물품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출발 바로 직전에 물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강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며 늦게 도착한 물품을 확인하며 한숨을 덜어낸다.
#소비자에게로 출발~
창고에서 배송을 준비한지 2시간 만에 드디어 출발이다. 11시30분. 배송지역은 2곳의 매장과 10여 명의 개인소비자다.
등촌3동성당 매장을 시작으로 오늘의 배송이 시작된다. 물량이 많아 배송이 늦어졌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트럭에 올라탄 강씨는 “이 시간이면 벌써 두 번째 배송지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물량이 많아서 늦어졌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한다.
강씨가 우리농 물류국에서 배송을 담당한 지는 이제 1년이 지났다. 이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서인지 크게 어려움은 없다. 그는 생명 먹거리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달한다는 점에서 어떤 직장보다도 자부심이 크다고 설명한다.
정오가 다되어서 첫 번째 배송지 등촌3동성당 우리농 매장에 도착했다. 매장을 방문했던 소비자들이 방금 도착한 싱싱한 농산물을 반긴다.
“달걀은 얼마에요?” “이거 언제 생산된 거예요.” 소비자들은 분주한 매장봉사자 대신 그에게 갖가지 질문을 던진다.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대답해주는 강씨는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을 볼 때 더욱 보람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재빨리 대치동에 위치한 매장으로 이동하지만 엎친데 덮친격으로 도로정체도 심하다. 올림픽대로 전광판에는 정체가 심하다는 메시지 뿐이다.
소비자들과 만나는 시간보다도 차에서 혼자지내는 시간이 더 길다. 혼자서 다니는 것이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준비나한 듯이 “아니요. 전혀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오히려 “혼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베테랑의 운전솜씨로 겨우 정체를 뚫고 두 번째 매장에 도착했다. 우리농매장을 운영하는 부부가 차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 나온다. 평상시보다 늦어진 배송 탓에 이들 부부도 물품 나르는 것을 거든다. 3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 돼서야 두 곳의 배송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다른 형님(배송담당자)들은 제대로 끼니를 못 챙길 때도 많아요. 오늘같이 바쁜 날에는 김밥 한줄 사서 운전하면서 먹거나 끝날 때까지 안 먹거나. 그래도 이렇게 식당에 앉아서 제대로 밥 먹는 건 호강하는 거죠.”
이제부터는 개인 소비자를 찾아다니면 된다. 서울 지역을 몇 구역으로 나눠 담당하는데 강씨는 동작구를 맡고 있다. 그는 “개인 소비자들은 위치가 인접해 있어 이제는 속전속결로 배송하는 일만 남았다”며 다시 기운을 차린다.
#신앙을 담아 전한다
“우리농 운동에 동참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교회 내에서 제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우리농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강씨는 “우리농은 다른 곳과 다르게 직장인 동시에 신앙 공동체”라며 “가족적이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어느 곳보다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농의 원동력은 ‘믿음’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료들이 서로를 믿음으로서 농촌과 도시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강씨에게 배송은 단순히 소비자가 필요한 농산물과 과일 등을 전해 주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 전한다.
회원들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점도 많다. 어떤 회원은 배송담당자들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발로 물품을 받는 회원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까다로운 회원들로 인해서 힘들지는 않을까 싶어서 물음을 던졌다.
“그런 분들도 있죠. 근데 정말 소수에요.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악의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없어요. 오히려 회원 대부분들이 반겨주시고 물 한잔이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하죠. 그분들 덕분에 일할 맛도 나고요.”
모든 회원들에게 물품을 배송하고 나니 시계는 오후 7시를 알린다. 여전히 도로정체는 심하다. 지칠대로 지쳤지만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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