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통 차면 다시 달려가야죠”
그는 누구를 만나든 먼저 악수를 청한다. 상대의 손을 얼마나 꽉 쥐는지 처음 대하는 사람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게 그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첫 걸음이고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다.
제21회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10월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장에서 만난 장순명(베네딕토·65) 박사는 또 하객들의 손을 일일이 꼭 잡았다.
올해로 꼭 의사생활 40년째를 맞은 장박사의 삶은 대부분 가난한 이들 속에서 함께 해온 것이었다. 중학생시절 읽은 ‘슈바이처 전기’의 감동을 잊지 못해 의사로서의 꿈을 차곡차곡 키워오던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잘나가는’ 의사로서 예정된 삶을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75년 정부 의료사절단 일원으로 아프리카 우간다에 파견된 것이 삶의 궤도를 바꿔 놓았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도 400㎞나 떨어진 오지의 병원에서 3년간 진료활동을 펼치며 아프리카와의 첫 인연을 맺었다. 귀국 후에도 그의 봉사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일반 병원에 다니긴 했지만 주말마다 빠짐없이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아 인술을 베풀었다.
“주말 봉사만으론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그는 1994년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꽃동네로 들어갔다. 기력이 있을 때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이미 쉰을 넘긴 나이였지만 가족들과도 떨어져 10년 7개월을 보냈다.
2004년 꽃동네 생활을 접고 재충전을 하고 있던 그에게 셋째 딸 귀범(28)씨가 ‘국경없는 의사회’를 소개했다. 이를 새로운 봉사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그는 그해 12월 말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떠났다.
원래 4주일의 단기 파견이었지만 자원해 두 달 넘게 근무하며 무려 200차례가 넘는 수술을 집도할 정도로 열정과 사랑을 쏟았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귀국해서도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모님이 이끄시는 것 같았어요.”
지난해 8월 또 다시 자원해 아프리카행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전교봉사수녀회가 설립한 잠비아 땀부 루위병원에서 4개월 동안 머물며 의사의 손길이라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지난해 말 귀국한 그는 올해 2월 모처럼 ‘돈이 되는’ 일반 병원에 취직했다. “밥 굶은 아이들에게 밥 한끼라도 먹이면서 치료를 해주고 싶어서”다.
“조그만 제 저금통이 차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자매 곁으로 다시 갈 것입니다.”
마지막 봉사의 길이 될 지도 모를 여정을 구상하며 신나게 ‘밥값’을 모으고 있는 장박사의 삶에서 짙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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