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주워 하루 연명 … "그나마 다행"
열명 중 아홉은 가족 있지만 돌보지 않아
노인 수발 위한 전문인력, 재원 확보 시급
고단한 삶
19일 오전 7시3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 승차한 지춘성(가명·68) 할아버지. 배낭 멘 할아버지는 마치 등산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지할아버지 뒤엔 커다란 손수레와 자루가 놓여 있었다.
한편에 짐을 푼 지할아버지는 이내 사람들이 놓고 내린 무료 종합 일간지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객차 안이지만 요리조리 바쁘게 움직이며 신문 수거에 여념이 없던 할아버지가 충정로역에 내렸다.
“정리 한 번 해야지. 이때 신문 못 주우면 하루 공치는 거야.”
고물상에서는 ㎏당 70원을 준다. “그래도 한 100㎏은 되겠는데.” 정리를 마친 할아버지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또 한 바퀴 돌아야지. 다른 노인들한테 뺏기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돼.”
무가지가 안 나오는 주말을 뺀 5일간 버는 돈은 대략 5만 원 정도. 한 달 25만 원 정도가 할아버지의 수입이다.
가족이 있지만
그날 정오. 서울 훈정동 종묘 공원.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날이었지만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역곡에서 왔다는 강영수(가명·70) 할아버지는 가족이 있다고 했다.
“결혼한 아들 하나 있긴 한데…” 말문을 쉽게 열지 않던 할아버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침밥 먹으려고 마루에 나갔는데 며느리가 나중에 먹으라고 하더라고. 손자, 손녀 녀석들 먼저 먹어야 한다고…” 강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서글퍼지더라고. 애들 학교 가고 나서 차려줬는데 눈물이 나서 못 먹었어.”
주변에 있던 할아버지들도 ‘요즘에는 식사하셨냐고 물어보는 것도 고마울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내 서로 말을 나누던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옮겼다. “밥 먹으러 가야지. 요즘엔 주민들 때문에 여기서도 잘 지낼 수가 없어. 귀찮고 보기 싫은 거지.”
독거노인 73% 생활 유지 힘들어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복지예산 증가추이 및 고령자 통계’를 발표했다.
전국의 65세 이상 독거노인 88만 3378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의 72.6%가 ‘생활하기에 소득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적당’과 ‘충분’은 각각 23.5%와 3.9%에 그쳤다.
독거노인의 월 평균 소득액은 25만 4000원으로 10만원 미만이 전체의 24.4%로 가장 많았다. 40만 원 이상은 16.7%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소득은 교통수당, 기초생활보장급여, 경로연금, 가족보조 등이 대부분이라 노인들의 일은 한정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독거노인들은 의료비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으며 주거비, 생계유지비 등이 뒤를 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독거노인 중 92%가 ‘가족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형제나 자식들이 있는데도 독거 생활을 하는 것이다. 혼자 살고 있지만 자녀나 손자, 형제·자매가 단 한 명도 없는 노인은 전체의 8%인 7만 1000여명에 불과했다.
독거노인들의 의지도 있겠지만 가족이나 친척들에 의해 방치되는 독거노인 증가는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교회의 고령화와 대책
서구사회는 고령화가 장기간에 진행됨으로써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경우 압축적 고령화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매우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서울대교구 노인복지위원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교회의 고령화는 11%를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노인복지위원회(위원장 최성균 신부)는 경제·신체·정신·사회적인 측면에 대해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1인결연사업을 비롯해 주거안정자금, 의료비 등을 지원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 취득 상담, 무료 급식 등도 시행중이다.
치과, 정형외과, 안과 관련 질환을 각 기관의 도움을 받아 진료도 하며 노인전문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해 독거노인들을 위한 도움 봉사자 양성도 하고 있다.
특히 노인복지위원회가 신앙적인 측면으로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노인복지위원회는 종묘공원을 사목적 지역으로 품고 있는 종로성당에 위치해 있다. 극한 상황에 내몰리거나 자신의 발로 성당을 찾는 노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사목활동을 펼치고 있다.
종로본당의 노인미사에는 매주 400여명이 참례하고 있으며 본당에서 세례 받은 노인은 지난 6년간 581명에 달한다.
노인복지위원회의 이 같은 활동은 노인복지가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결과이다.
갈길 먼 독거노인 복지
우리나라는 노인복지에 대한 서비스를 다방면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독거노인들이 체감하는 복지수준은 미미할 뿐이다.
재가노인복지서비스의 이용대상은 실제 65세 이상의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및 저소득층 노인 일부에 한정되어 있으며 서비스는 가정봉사원파견, 주간보호, 단기보호 등 3종류로 제한되어 있다.
서비스 수준 또한 무급 자원봉사 중심으로 전개돼 가정봉사원파견서비스 수준은 매우 열악하다. 유급은 40시간, 무급은 20시간의 교육과 실습을 이수하면 가정봉사원이 양성된다. 일본의 경우 1·2·3급의 과정을 두고 각각 50시간, 130시간, 230시간의 교육과 실습을 이수해야 주어지는 제도와는 비교가 된다.
이밖에 노인 수발 전문 인력과 재원 부족도 큰 문제이다. 교회 역시 이러한 상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특히 교회는 노인보다 상대적으로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중심의 복지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보니 노인복지 서비스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 봉사자 양성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본당에서 전개되는 노인복지사업은 전달체계와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본당이 노인분과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충분한 교육을 수료한 전문 인력은 찾기 힘들다.
이는 예산편성의 소극성으로 이어진다. 교구 차원의 예산책정은 매우 적은 실정이며 본당 차원에서도 주임신부의 노인복지활동에 대한 이해와 의지에 따라 예산편성이 달라 질 수 있다.
교회의 역할과 과제
개신교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독거노인 복지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
노인복지위원회는 지난해 ▲각 본당 노인분과 산하 노인봉사회, 노인전문자원봉사회 구성 ▲교구 차원의 노인봉사자 양성, 노인전문상담원, 노인요양보호사 양성 교육 ▲가톨릭 노인복지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독거노인들을 돌봐야 한다고 발표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기 아비를 저버리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어미를 노엽게 하는 것은 주님의 저주를 부르는 것”(집회 3, 16).
노인에 대한 존경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의 표현으로 종교적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서울 사회사목부 노인복지위원장 최성균 신부
“존경 받아야 할 노인들 힘겨운 모습 안타까워”
“종묘공원에서 노인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매춘, 유흥 등에 젖어드는 노인들을 보고 가만있지 않는 거죠.”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노인복지위원회 위원장·종로본당 주임)는 종묘공원을 가득 채우던 독거노인들의 삶을 걱정했다.
“안타깝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분들이 주변 환경으로 인해 홀로 사시게 되는 모습, 결국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모습에서 아픔을 느낍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독거노인들의 삶은 공식화 되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집에서 나오게 되는 노인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원 등에 가서 주변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거죠.”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어울리다 보면 술 한 잔 하게 되고 정신과 마음을 놓다보니 그저 방치 상태로 놓여 있는 거죠. 그러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에게 정도 쉽게 주고.”
최신부는 2002년 종로본당에 부임하면서 지역특성에 따른 사목정책의 하나로 ‘노인사목’을 특화시켰다. 그 시작은 성당 옆 종묘공원을 찾는 어려운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무료급식이었다.
“무료급식을 시행하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충분한 양의 식사를 제공해도 2~3배 이상 되는 양을 받아가시더군요. 단순한 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정신적 허기’였다. “독거노인 분들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등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상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걸 식욕으로 충족시키는 거였죠.”
그는 이러한 독거노인들의 정신적인 측면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노인안전보호센터’를 운영, 봉사자 양성 및 교육을 비롯해 재가노인봉사회, 노인상담, 전화돌봄 등을 펼치는 ‘노인 서비스’가 그것이다.
이와 함께 최신부는 독거노인들의 영적인 허기짐도 채워 주었다. 매주 토요일 노인미사를 신설해 현재 매주 400여명의 노인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예비신자 교리를 받는 이도 100명에 이르렀으며 2007년 2월 현재 581명의 노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
“누구도 그들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가정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회가 고령화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분들은 이 시대의 빛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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