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주님 부르시는 곳에 있겠습니다"
12월 2년 임기 만료
취임 초 반대와 오해
이젠 많이 풀려 다행
“반성 없는 역사에는 제대로 된 미래 없어”
교회, 사제의 몫 확인
이번 호 ‘가톨릭 인터뷰’가 만난 인물은 교회 언론에서보다 일반 언론에 자주 화제의 인물로 등장한 송기인 신부(69)다.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통하는 송신부는 자신이 지난 2005년 12월부터 맡아오고 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직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인터뷰를 자청했다.
서울 퇴계로 매경미디어센터에 자리한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송신부는 성직자다운 경건함과 아울러 온화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오는 12월로 2년의 임기를 마치게 되는 송신부는 주위의 간곡한 연임 요청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약속은 다름 아닌 지난 6월 선종한 고 정명조 주교(전 부산교구장)와의 생전의 약속이어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가장 빠른 시일 안에 교구로 복귀하겠다는….
“순간 순간 함께 하시는 주님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견뎌내기 힘들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성직자 신분으로 국가기관의 장관급 직책을 맡아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을 법한 송신부는 그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로 받아들였기에 견뎌낼 수 있었노라며 그간의 고충을 ‘주님의 숨’이란 말에 응축시켜 털어놓았다.
“저를 향한 부정적 의견이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초창기에 가장 반대하던 이들도 수긍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 시간 기울여온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송신부가 ‘처음’이라며 털어놓는 속내는 그가 순간순간 얼마나 큰 고뇌 속에서 발걸음을 떼 왔는지 짐작케 했다. 출발부터가 그랬다. 스스로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거사 정리가 꼭 필요하다고 수없이 역설해왔지만 자신이 그런 중책을 맡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로마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고 나서야 자신이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선 생전 처음 겪는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출발부터가 그랬으니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빤히 보이는 일이고…. 숱하게 피해보려고 애썼는데도 안 되는 일이니 주님께 모든 걸 맡겨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게 됐지요.”
송신부는 그동안 진실화해위원회에 쏟아진, ‘한풀이식’ 과거 정리에만 얽매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무작정 과거를 덮어 놓고 미래로 가자는 건 헛발을 내딛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별개가 아니며 주님은 늘 우리 가운데 실재하신다는 그리스도교 역사관에 비춰볼 때도 과거를 바로 챙겨야 제대로 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도 없음을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습니까.”
특히 송신부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과거사 정리 작업이 단순히 과거를 들춰내 누구를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참다운 화해를 통해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일임을 역설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과거사 정리는 일개 정부의 일이라기보다 국민과 민족의 과업이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화해는 바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짓누르고 있는 어두움을 걷어내는 것이 역사 바로세우기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왜곡당하는 현실에 누구보다 큰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드러낸 송신부는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한 이후 새로운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옮기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보여주었듯이 말과 행동은 진실할수록 힘이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진리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사심이나 거짓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기에 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2년을 반추한 송신부는 그간 자신이 해온 일 가운데서 오묘한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슴에 한이 맺힌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함께 가슴 아파해온 지난 시간이 본당에서 신자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함께 하려 애쓰는 사제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이 무엇보다 사제의 몫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가슴 아픈 역사를 지녔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내전으로 역사에 뼈아픈 상처를 남긴 스페인, 칠레 등 많은 나라에서 이뤄진 과거사 청산 사례들을 보면 성직자가 맡은 경우 성공했음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대로 짚기 위해 직접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페인 등지를 방문해 화해의 문화를 공부하기도 했다는 송신부는 과거 청산에 성공한 나라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고백문화가 보편화된 가톨릭 국가들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때문에 그는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에 가톨릭교회가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국민 모두가 마음을 열고 하나되기 위해서는, 국력이 신장되기 위해서는 더더욱 억울한 이가 없어야 합니다. 모두가 건강한 사회의 성원이 될 때 국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의 몫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앞장서 억울한 이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보듬어 안을 때 모든 국민이 새롭게 날 수 있다고 역설한 송신부는 간절한 마음으로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어린 사랑을 요청했다.
지금껏 털어놓을 데가 없다가 가슴 후련해졌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한 송신부는 위원회를 빠져나온 기자를 쫓아나와 자신의 마음이 담겨있노라며 책 한권을 손에 쥐어주었다. 가까이서 지켜봐온 지인들이 엮은 10년도 더 된 그의 은경축 기념문집 제목은 ‘신부님이 거기 있었네’였다. 늘 주님이 부르시는 곳에 있겠다는 그의 다짐이 전해져오는 듯했다.
■송기인 신부는
1938년 9월 24일 부산에서 태어난 송신부는 1970년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한 후 72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군사독재 시절 부산인권선교협의회 회장(1974), 국제엠네스티 한국이사 겸 부산지부장(197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교회사를 전공해 부산교회사연구소장(1988~2005)으로 일하며,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등을 맡을 정도로 과거사 청산에 관심을 보여왔다. 요산 김정한 선생 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생가와 문학관을 완공하는 등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일에도 관심이 큰 그는 은퇴 후에도 음식쓰레기 안 남기기 운동 같은 사람과 사람간의 화해, 사람과 자연간의 화해를 위한 일에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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