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교구에서 처음으로 ‘병원사목’이라는 특수사목을 따로 분리해서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병원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일명 ‘원목사제’로서 소임을 하게 되었는데 머리털 나고 병원이라고는 가본적이 없고 교구에서도 나름대로 가장 튼튼한(?) 신부로 이름이 나 있었기에 저로서는 원목이라는 소임이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마산, 창원의 큰 병원에서 주일미사를 집전했고, 그 이외 대부분의 시간은 창원 파티마 병원 원목실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는 원목실은 병원 5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5층은 소아들이 입원하고 있는 곳이라 문을 조금만 열어놓아도 아기들 우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립니다. 그런데 울고 있는 아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조금 성하다(?) 싶으면 자신보다 큰 링거병을 높이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애들도 있습니다. 이 아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환자가 맞나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엄마들은 조용히 하라고 나무라지만 복도를 뛰어다니는 그 아기들의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모릅니다. 멋 모르고 뛰노는 아이들이지만 그 모습은 무료한 병원생활에 삶의 희망을 주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 틈에 끼어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고 아기들 병실에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병원을 시끄럽게 하는데 일조합니다.
그런데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병원이다 보니 ‘신부’라는 존재를 잘 몰랐습니다. 직원들도 신자 아닌 직원들이 많다 보니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지 감이 잘 안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홍보수단(?)으로 검은 수단을 입고 병원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수단을 입고 병원 복도를 다니니까 역시 저를 뒤따르는 것은 아기들입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옷자락도 만져보고 단추가 몇 갠지 세어보고 그 속(?)도 들여다보고 신기해 했습니다.
어느날 신자 아닌 직원이 “신부님, 그 옷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맞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주인공이 입었던 옷과 비슷하네요”라고 말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영화속 주인공의 옷과 비슷하긴 한 모양입니다.
하루는 날이 더워서 수단을 입지 않았었는데 직원 한 분이 다가와서는 “신부님, 매트릭스 복장 왜 안합니까? 신부님은 그 옷 입을때가 제일 멋진데요”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직원 덕분에 올 겨울에도 수단을 입어야 할까 봅니다.
본당사목이 찾아오는 신자들 위주의 사목이라면 제 소임인 병원사목은 아픈 환자들이나 병원에 종사하는 분들을 알아서 찾아가는 사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되지요. 병실을 방문해보면 많은 신자들은 기쁘게 신부를 맞이하지만 신자 아닌 분들은 ‘아파 죽겠는데 뭐 할 라 왔노, 빨리 가소’ 하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이것 저것 물어보면 상세히 말씀해 주시고 과거의 아픈 기억까지 털어놓곤 합니다. 얘기 들어 줄 사람이 그리웠던 게지요. 그런 마음을 알기에 기쁘게 병원 이곳 저곳을 오늘도 폼나게 다닙니다.
최경식 신부 (마산교구 병원사목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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