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시 읖조리며 선조들의 ‘그 길’ 걸었다
양근성지에서 벗어나 5분 여를 걸었을까. 다리 5개로 버티고 선 웅장한 모습의 양근대교가 나타났다.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와 강상면 병산리를 잇는 다리다. 1997년에 완공, 양평대교와 짝을 이루는 양근대교는 765m, 너비 12m, 높이 17.9m, 왕복 4차선의 말 그대로 대교(大橋)다. 그 아래로는 고결한 기품이 느껴진다. 양근대교 위에서 바라본 한강은 고매한 인격을 갖춘 성인(聖人)을 닮았다. 한강은 큰 바위 앞에 섰을 때의 느낌처럼 거역할 수 없는,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하는 힘이 있다. 조용히 말없이, 그렇게 모든 것을 담고 천천히 흐른다.
한국교회 발상지를 향해
양근대교를 건넌 후 오른쪽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 천진암성지로 가는 길. 도로 표지판이 퇴촌 15㎞, 광주 28㎞ 남았다고 일러준다. 각오를 단단히 했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는 5㎞. 천진암성지까지 족히 6~7시간은 걸어야 한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목덜미가 땀으로 촉촉해질 즈음, 길 옆 계곡으로 한 등산객이 내려온다. 유혹이 생겼다. 길을 따라가지 말고, 산을 오르면 천진암에 더 빨리 다다를 듯 싶었다.
“산길을 타면 천진암성지까지 빨리 갈 수 있나요?” “산 능선을 타면 아마 2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겁니다.” 등산객을 떠나 보내고 한참동안 길 위에서 망설였다. 처음 가는 산길을 혼자서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대로를 따라 걸을 것인가. 고민에 고민…. 결론은 ‘대로를 따라 걷자’로 내렸다. 안내자도 없이 혼자 가다가 산에서 길을 잃을 염려도 있고, 또 힘든 산길이 오히려 묵상을 방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길…. 양근 태생인 권철신과 권일신도 분명 걸었을 그 길이다. 이벽과 함께 한국교회 창립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권철신과 권일신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권철신과 권일신의 약전을 요약한 수첩을 꺼냈다. 특히 권일신의 약력에 눈길이 갔다.
‘1742년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에서 탄생, 1779년 천진암 강학회 참석, 1784년 이벽 성조에게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음. 이후 이웃과 친척 등에게 전교. 특히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이존창과 호남의 사도 유항검을 입교 시켜, 복음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 1791 신해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혹심한 고문을 받은 후, 귀양가는 도중에 순교.’
참으로 기구한 삶이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십자가를 질 수 있었을까. 신앙을 선택하지만 않았어도 편안한 유학자 혹은 서민의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그들. 그 무엇이 그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었을까. 무엇이 그들의 영혼을 움직였을까.
12㎞를 걸은 지점. ‘여기서부터 광주시 입니다’라는 푯말이 반긴다.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가파른 영동리고개를 넘어 7㎞를 더 걸아가자 관음사거리(구 도수삼거리)가 나타났다. 퇴촌과 천진암의 갈림길. 왼쪽 길이 천진암 계곡이다.
양근성지에서 출발한지 6시간이 지났다.
계곡을 올랐다. 이제 약 7㎞만 더 가면 천진암에 이를 수 있다. 앞으로 1시간 이상 더 걸어야 한다. 다리가 힘들어 했지만 이내 맑은 소나무 향이 등을 저절로 떠민다.
선조들의 발길 닿은 길
‘이 계곡을 수없이 오르내렸을 이벽과 정약용 등을 비롯해 한국교회 창립 선조들도 이런 향기를 맡았을까.’
1827년, 지금으로부터 180년 전. 당시 65세 노인이 된 다산 정약용이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가고 싶다”며 천진암 계곡을 찾아온다.
당시로선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성지에 가는 것은 “나는 천주교 신자”라고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다산은 그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65세 대학자는 천진암 계곡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참으로 아름다운 시 한편으로 남긴다. 천진암성지 변기영 몬시뇰이 번역한 다산의 그 시를 계곡을 오르며 읽고 또 읽었다.
“바윗돌 사이사이로 실처럼 가늘게 난 이 오솔길은(石徑細如線), 그 옛날 어린 시절 내가 와서 거닐며 노닐던 그 길인데(昔我童時游)… , 이제는 나그네로 다시 찾아오니 내 마음 한없이 슬프기만 하도다(重來愴客心), 호걸과 명사들이 일찍이 강학하며 독서하던 이곳에서(豪士昔講讀), 우리는 상서를 한권씩 외운 후 불살라 물에 타서 마시며 익혔었지(尙書此燒鍊), 황폐한 이곳에는 잡풀만이 무성하게 덮혀 자라나고 있고(荒寮草色深), 참선하던 이들은 사라져 선방엔 불이 꺼지고 아주 폐쇄되고 말았구나(禪燈廢少林)…, 우리가 공부하던 누각 앞의 기숙사들은 무너져 절반이 빈터인데(樓前寮舍半墟丘), 삼십년만에 지금 내가 나그네 신세가 되어 다시 찾아오니(三十年來重到客), 나는 아직도 괴로운 바다에 뜬 외로운 배 한 척의 신세로세(猶然苦海一孤舟).”
이벽 성조와 한국교회 창립 선조들이 오르내렸던 길, 다산 정약용이 65세 노구를 이끌고 다시 찾았던 그 길을 오른다. 계곡에는 단풍이 짙었다. ‘천진암성지 500m’ 표지판이 보였다.
사진설명
▶양근성지에서 천진암성지 가는 길에 놓인 양근대교.
▶천진암 계곡을 오르다 만난 단풍.
▶천진암성지 가는 길에 놓인 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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