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는 그렇게 수중분만으로 태어나 TV다큐멘터리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었다. 우리 수아는 수중분만으로 통증을 적게 겪고 태어나서인지 늘 긍정적이다. 넘어져도 ‘괜찮아 괜찮아하며 툭툭 털고 일어난다.
내 삶 전부가 수아와 연결돼 있지만, 특히 공연과 관련해서도 수아와의 기억들이 참 많다.
지난 무대 중에서 특별히 잊지못할 작품 중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모노드라마는 처음이었는데 혼자서 무대를 지킨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 알았었던 작품이었다. 그 작품 안에는 이러한 대사가 있었다.
“그래, 사랑하는 내 딸아. 동네 사람들한테 들으니까 네가 양치질도 혼자 다 하고, 자장가도 스스로 부르면서 잠이 들었다더구나. 네가 다섯 살 때 엄마가 널 돌봐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공연 당시 우리 딸 수아가 그 비슷한 나이였다. 난 공연 때문에 매일 밤 극장에 있었다. 순간 그 대사가 실제 최정원의 삶으로 막 비집고 들어왔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공연이 끝나면 10여분을 혼자 펑펑 올다가 다시 운전해서 집으로 가고 그랬다. 다신 이 작품 안할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갔던 작품이다.
3년쯤 전 ‘지킬 앤 하이드’ 공연 때는 뜻밖의 일이 있었다.
내가 맡은 배역 루시는 공연 중에 하이드의 칼에 찔려 죽는다. 그런데 그 장면이 되자 갑자기 객석에서 한 아이가 오열을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보니 우리 수아였다. 미리 이야기를 안해줬던 것이 실수였다. 우리 엄마 죽었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공연 중에 아빠가 안고 나가야 했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다시 나와 인사한다고 말해줘도 아이는 계속 울었다.
어린이 뮤지컬 ‘방귀 뿡 트림 꺽’이라는 작품에서는 난 요정을 맡았었다. 노래도 예쁘고 의상도 참 예뻤는데, 요정 옷에 날개가 달려있었다. 그날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는데 수아가 계속 내 몸을 만지는 것이었다. 엄마가 날개를 어디에 숨겼는지 궁금해서였다.
아이와 함께 있다보면 늘 이런 순수함을 배운다. 요즘 진행을 맡고 있는 ‘뽀뽀뽀’에서도 아이들을 만나면 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또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한동안은 나에게서 늘 떠나지 않는 걱정도 바로 수아였다. 집에 들어오면 대본 생각, 연습실이나 공연무대에 나가면 수아 걱정인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걱정 또한 수아 덕분에 극복했다.
어느날 수아 유치원에서 동요발표회 있어 참가하게 됐다. 유치원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수아 친구들이 ‘와, 수아 엄마다’라며 우르르 뛰어나왔다. 그러자 수아가 하는 말. “수아 엄마 아니야, 뮤지컬 배우 최정원이야.”
그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수아는 단순히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나는 “수아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힘을 얻었다.
이후 집에 오면 나는 철저히 엄마가 된다. 그리고 연습실, 공연장에서는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최정원이 된다. 배우 최정원.
늘 연습실이나 공연장에 항상 미리 와 있는 것도 도착한 그 순간부터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 남편과 수아에게 더 떳떳한 아내, 자랑스런 엄마가 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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