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성당’, ‘백골 성당’, ‘독수리 성당’, ‘맹호 성당’, ‘방패 성당’, ‘비룡 성당’, ‘승진 성당’, ‘오뚜기 성당’, ‘이기자 성당’, ‘태풍 성당’….
군 성당들 이름을 보면 하나같이 멀쩡한(?) 게 드뭅니다. 거룩하고 따듯한 이름들보다는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부대 명칭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 그러기는 하지만 한 번씩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백골, 오뚜기, 이기자….
제가 첨으로 근무한 곳은 이기자 부대였습니다. 거기서는 이름이 늘 문제였습니다. 소포라도 하나 받으려고 주소를 알려주려면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설명하고 웃어야 합니다. 강원도 화천군까지는 문제없습니다. “사내면~” - “산내면?”, “아니 사나이 할 때 사내, 남자~” - “아~ 사내면….” 그리곤 잠시 머뭇거리면서 “사창리~” - “?? 뭐라고요?”,
“어…. 그러니까…. 잘 들어요, 사! 창! 리!” - “사창? 리.... 이름이 좀 그렇네요….”마지막에 성당이름을 부릅니다. “이기자 성당~” “뭐라고요?” “싸워서 이기자할 때 이!기!자!” 급기야 “푸하하! 무슨 성당 이름이 그래요?”
이!기!자! 성당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이기자 성당.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15사단 성당은 사내면 명월리에 있는 ‘명월 성당’이니 말 다했지요. 인사도 재미있습니다. 충성이나 단결 구호 대신에 ‘이기자!’라고 인사를 합니다. 첨에는 병사들이 저보고 ‘이기자’라고 인사를 하면, ‘뭐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라는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또 은근히 미운 상급자한테는 웅얼거리는 소리로 ‘개기자!’ 라고도 한다니 재미있는 인사입니다. 또 누구는 ‘이기자!’하면 ‘그러자~’라고 인사 받기도 한다나요? 하지만 성당 바닥에 그것도 제단 몇 미터 앞에 ‘이기자!’ 라는 글자와 부대마크가 찍혀있는 걸 보면 맘이 심란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늘 지라고 하셨는데….
이런 살벌한(?) 이름과 용어 속에서 병사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등 공신은 초코파이입니다. 많은 분들이 군종하면 ‘초코파이’를 떠올립니다. 춥고 배고픈 병사들에게 따뜻한 커피와 함께 초코파이를 건네는 군종 신부의 모습.
초코파이의 힘
요즘도 성당에서는 초코파이를 줍니다. 그러나 이제는 초코파이의 힘이 전보다 약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군사목은 힘들고 배고픈 병사들에게 휴식과 먹거리를 제공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초코파이 보다는,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도움보다는, 병사들의 인격에 초점을 맞춘 군사목이 더 절실합니다. 사회에서 어른이 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입대하는 젊은이들에게 군은 단체 생활과 엄격한 규율을 통해 성인이 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도 학창시절 공부를 핑계로 신앙에 소홀했고 주로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성당을 오던 어린이가 스스로 하느님을 찾는 성인이 됩니다. 이들에게 단순한 먹거리보다는 ‘어른 대접’, 군 성당 내 능동적이고 다양한 역할 제공 등은 이들을 서서히 성인 신자가 되게 합니다.
어른 대접의 한 비법은 병사들도 나라의 봉급을 받으므로, 성인 신자의 기본 의무인 교무금과 주일 헌금을 반드시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대하고 다시 냉담하는 한이 있어도 어려운 군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성장하는 모습은 대견스럽습니다.
무서운 성당 이름과 정을 나누는 초코파이 사이에서 군사목은 병사들을 어른으로 만드는 성인식을 제공합니다. 내일도 제가 있는 무서운(?) ‘사자(레오)’ 성당에서는 병사들에게 초코파이를 줍니다. 그래도 성당 온 친구들 맨입으로 보내기는 아쉽거든요.
사내면 사창리. 이상한 상상하기 딱 좋은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괜찮은 이름입니다. 한자로 보면 사내(史內), 사창(史倉)입니다. 예로부터 날씨가 적당하고 재난이 적어 나라의 오래된 문서나 역사책들을 보관하기 좋아 문서 창고들이 많았고, 지명 또한 그리된 것이지요. 그만큼 사람 살기도 좋은 곳이 아닐까요?덤으로 ‘이기자!’ 라는 부대명도 1953년도에 창설될 때, 최초의 순수 우리말 부대명이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요?
오정형 신부(군종교구 성레오본당 주임)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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