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사목의 주 업무는 병실을 방문해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신자이건 아니건 기도가 필요한 분이면 달려가서 안수해 주고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줍니다.
병실을 방문하면 먼저 반갑게 눈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환자분들 아픈 부위나 손, 등을 만져주고 쓰다듬어 주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습니다.
“아이구 예수님 손길 같네예! 더 쓰다듬어 주이소” 하십니다. 어떤 할머니는 드러내놓고 자신의 등을 내미시며 손 댄 김에(?) 등까지 내미십니다. 시원하게 좀 긁어 달라며….
“식사는 하셨어요?” “몸은 어떠세요?”하고 여쭈면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것 저것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해 주십니다. 더러는 물어보지 않은 개인사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선 채로, 때로는 몸을 구부려서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니 허리도 아프고, 차마 그분들의 말을 끊을 수도 없고 인내심을 가지고 듣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백소에서 듣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멀었나 봅니다.
환자분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사연없는 분이 없고 그 내용이 한결같이 기구하고 가슴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신부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부모, 친척도 멀리하고 나를 업신 여겼던 사람들을 미워하며 죽도록 돈만 보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런 중병을 얻고 나니 지난 내 삶이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중년의 한 형제님이 지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입니다.
“자식들이 너무 보고싶어! 못된 것들 같으니….” 자식들 보는 앞에선 차마 말 못할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재산 다 물려주었는데 병원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간병인 한명 붙여놓고 자식 행사 다 했다고 찾지도 않는다며 하소연하시는 할아버지께 다 큰 손자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병원은 저의 근무처이지만 제 삶을 돌아보는 또 다른 피정의 집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몇달이 지나도 찾지 않는 자녀들을 이제나 올려나 손꼽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하고, 암 투병중인 환자들을 만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사제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큰 감사로써 밀려옵니다. 중병에 걸려 왜 내게 이런 병이 걸렸는지 수없이 원망과 슬픔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환자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원망도 하고 미워도 했던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임종을 준비하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나의 또 다른 스승들입니다. 링겔병을 들고 힘차게 병원 복도를 뛰는 아이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중환자분들, 죽음의 고통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환자분들…. 한분, 한분이 나에게 많은 물음과 느낌표를 던져주는 스승입니다.
최경식 신부 (마산교구 병원사목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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