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무대에 선 지도 내년이면 어느덧 20년째다.
지금까지 올린 작품들은 모두 하나하나 소중한 작품들이다. 어떤 작품, 어떤 역할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은 여러 자식 중 누가 가장 좋냐고 묻는 것과 같은 듯하다. 모두 조금씩은 후회도 남고 ‘좀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분신들이다.
여러 다양한 작품을 해왔지만 그동안 작품을 고른 기준은 세가지였다. 우선 이전 작품과 다음 작품 사이의 변신 정도를 가늠해본다. 늘 완전한 변신을 추구하려고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함께하는 사람들. 세 번째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어떤 작품이든 할 때마다 내?외적인 역량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하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을 정해두지는 않는다. 하긴 아직까지 해본 적 없는 악역에는 조금 욕심이 나기도 한다. 여하튼 딱히 어떤 역을 하고싶다기 보다는 어떤 역을 하든 지금 내 나이에서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다.
실제로 어렸을 때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떤 연기를 해도 그것이 다 내 삶 속에 녹아드니 매우 재미있다.
난 배우에게는 정년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 내 나이가 골든 타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쉰살, 예순살이 되어도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면 되는데 다시 젊어지려고 억지를 쓰는 순간 무언가 틀어지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생겨나지 않을까 한다. 배우가 스스로 나이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연기도 더 편해진다. 작품이 원하는 배우, 그리고 그 안에 최정원이 존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뭐 평생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있진 않다. 어릴 적에 불꽃놀이를 참 좋아했는데 불꽃이 탁 터졌다가 지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 다음에 나는 꼭 불꽃처럼 살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유행가 가사 같지만.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공연하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이다.
‘배우로서 무대에서 이보다 더 나아질 수 없겠다, 이것이 내 최고의 작품이다’ 싶어지면 그땐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관객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예전 뮤지컬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문화계를 생각하면 요즘 우리 뮤지컬계는 정말 꿈 같은 모습이다. 길을 걷다가 알록달록한 뮤지컬 포스터들이며 현수막을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내가 출연하는 공연이 아니어도 괜히 자랑스럽고 기분이 참 좋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뮤지컬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오지만 나는 무대를 떠나지 않는 이상을 수락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많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무대에 설 에너지가 모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뮤지컬 배우 역시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필요하다. 사랑과 같다고 할까. 아무리 멋진 남자가 나타나도 늘 한결같이 우리 남편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마음. 잠깐 혹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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