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씨앗 뿌려진 곳에
100년 성당 주춧돌 놓고
양근성지에서 꼬박 7시간을 걸어 천진암 성지에 도착했다. 땀 흘리며 도착한 성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밀려왔다. 고통의 신비 뒤에 찾아오는 영광의 신비가 온 몸을 기쁘게 한다. 천진암. 세계 선교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기적의 땅.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신앙이 수용된 바로 그 땅이다.
조선의 석학, 천진암에 묻혀살다
부부가 함께 거룩한 땅(성지, 聖地)을 오른다. 부부 뒤로 짙은 소나무 향과 붉은 물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단풍이 함께 펼쳐진다. 그 뒤를 따라 함께 걸었다. 성지 입구에 예수님을 안은 성모님이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성모님의 편안한 웃음이 마치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교회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으로 읽힌다. 성모님 왼쪽으로 성지 오르는 길이 있다. 급경사여서 빨리 오르려다가는 이내 지친다. ‘천천히’걸었다. 그 걸음의 막바지를 이르면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터가 나타난다.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 건립되는 새 성전 머릿돌에 강복을 베푸노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온 겨레가 영원히 화목하기를 비노라.”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진암 100년 대성당을 강복했다. 언제쯤 우리도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정성당과 같은 대성당을 가질 수 있을까. 마음으로야 그런 성당 하나 ‘빨리’만나고 싶지만, 천진암 대성당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100일 기도도 아니고 100년 정성이다. 워낙 대공사다 보니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는데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
천진암 성지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머리인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등 5위 묘가 모셔져 있고, 이밖에도 정하상, 유진길을 비롯해 창립 선조 직계 가족 정약전, 정지해, 이석 등 선인들의 묘가 안장돼 있다.
이벽. 1700년대 후반, 조선의 가장 뛰어난 석학 중 한명. 다산 정약용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지성으로 추앙할 정도로, 이벽의 학문적 성취는 출중했다. 당시 병조판서(현 국방부장관)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봐도, 사회적 지위도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출세와 부귀영화는 자연히 따를 터였다.
하지만 그는 고독한 길을 걷는다. 신혼의 달콤함마저 멀리하고 천주교 관련 서적에 심취, 천진암에서 묻혀 살았다. 그리고 그 배움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천진암 강학회를 주도했다. 그 강학회에 함께한 이들이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 정약용, 이승훈 등이다. 처음에는 분명 새로운‘학문’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벽은 이내 그 학문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하느님은 그렇게 이벽을 비롯한 당시 조선 최고의 두뇌들을 당신 섭리의 도구로 사용했다.
희생 위에 놓여진 초기 신앙공동체
조선교구 5대 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1818∼1866)는 “조선왕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시작하기 위하여 천주께서 간택하여 쓰신 도구는 이벽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변기영 몬시뇰은 “다블뤼 주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의 시작을 1784년 이승훈 선생의 북경 영세에 두지 않고, 이벽 성조의 ‘저 위대한 강학회’(1777)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벽에 의해 파견되어 1784년 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은 1789년 북경 선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제 일생에 성현을 한분 만났사온데, 이 어른은 우리 종교에 관한 책을 이미 가지고 계셨고, 그 책 내용에 대하여 아주 여러 해 동안 전념하며 자신을 거기에 적응시켰습니다. 이 어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니, 우리 종교의 여러 가지 점들, 특히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점들에 대해서까지도 아주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에 대한 이 어른의 신덕과 열성은 교리지식보다 훨씬 더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바로 이 어른이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이시고, 저에게 혼을 넣어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세상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이벽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한국교회 신앙 씨앗을 뿌리는 일에 어찌 희생이 없을 수 있는가. 이벽의 아내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생긴다. 병조판서 장인의 진노가 하늘을 찔렀다.
‘사랑하는 딸이 청상과부로 죽은 것은 사위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천주학인가 뭔가하는 이상한 사교에 물든 탓이야.’ 병조판서 장인은 이후 이벽을 비롯해 천주교 탄압에 앞장서게 된다.
이후 이벽은 모진 박해와 가족의 핍박을 겪다가 1786년 그렇게 하늘 품에 안긴다. 이 땅에서 신앙 공동체를 최초로 시작하고, 이승훈을 북경에 보내 세례를 받고 오게한 인물. 그가 밟았을 땅에 지금 서 있다. 그가 밤을 새워 신앙을 공부했던 그 땅에 서 있다.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미사 및 순례시간
▲순례시간: 매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미사: 평일 낮 12시, 주일 오전 7시30분, 낮 12시 ▲성체거동: 매월 마지막 주일 낮 12시, 그레고리안 미사 후 1시30분까지
※성지순례 문의 031-764-5994
사진말
▶성지입구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성모자상.
▶지난해 골조만 완공된 천진암 박물관 전경.
▶천진암 100년 대성당 터에 놓인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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