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바라본 세상
계룡산 밑에는 굿을 하는 장소와 소위 도(道)를 닦는 사람들이 많다. 땅거미가 드리워지고 밤이 되면 산 속에서 굿하고 징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그 소리는 신들린 사람들이 귀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다급해지면 보살과 도사를 찾고, 자녀의 수능 점수를 올려달라고 신령님께 빌고, 점쟁이에게 투자를 묻는다. 이들은 하느님을 서양 귀신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주역, 팔괘, 일월성신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면서 TV에 나와 세상을 미혹한다.
지금은 번개가 번쩍이고 태풍이 오고 가뭄과 기근이 오는 것이 북태평양 고기압과 국지성 기압골의 이동으로 해석되는 시대다. 인공위성을 통한 관찰과 분석으로 일기예보를 하면서 우리는 자연현상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됐다.
인간이 달에 착륙하면서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없다는 것을 믿는 어린이는 없어졌다. 정화수 떠놓고 달에 빌었던 우리 옛 여인네들의 정서도 끝났다.
아직도 원시시대에 사는 사람은 깨어나야 한다. 광대무변한 우주 저편의 은하계나 달에 일월성신이 있는가. 계룡산 속에 산신령이 꼭꼭 숨어사는가.
SF영화에 나오듯 땅을 뚫고 들어가면 맨틀이나 지구 핵 위치에 지옥이 있고 지하세계 용암 속에는 귀신들이 득실득실하게 모여 사는가.
우리는 이글거리는 용암 위에 꿈틀거리는 염이 깔리고 얇은 껍질이 덮인 지구라는 동적 안정체 위에 살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초당 30km 속도로 공전하고 24시간에 한 번 자전하는 지구는 반지름이 6378km이지만 껍질은 5~50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밑에는 규산염으로 구성된 맨틀 층이 2800km 깊이까지 있고 그 맨틀은 매년 몇 cm 씩 대류하며 열적, 중력 평형을 이루고 꿈틀댄다.
지구의 중심은 철 성분 등 무거운 물질이 고온 용융 상태로 핵을 이루고 있다. 가끔 이웃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지만, 염을 뚫고 나온 쇳물 재가 하늘을 가리려면 1억년이 더 남았다니 참으로 고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거대한 존재와 현상이 단 하나의 의지에 의하여 지배되고, 그 지배하는 진리는 하나로 묶여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의 진리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상태의 체계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 동적인 조화에 어떤 변화를 주면 모든 것은 이 변화와 어울러져 또 다른 조화로운 상태로 변한다.
물속의 물체를 잡으려고 손을 넣으면 손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에서 빛이 굴절하기 때문이다. 이는 돋보기로 빛을 모으는 것과 같은 논리다. 빛은 간섭 현상과 회절 현상을 일으켜 물질의 결정구조를 밝혀내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20세기 초까지 과학자들은 빛은 ‘파동’(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생겨나는 물결이 바로 파동이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 공간에는 그 파동을 매개할 에테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후, 빛은 입자 특성도 갖고 전자파 특성도 갖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반물질과 광자의 존재도 밝혀졌다. 여기서 상당수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 졌다. 양자역학적 해석은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라는 벽에 부딪쳤고 이제는 과학도 하나로 묶여지는데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실존하는 사실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소립자를 확인하고, 게놈 지도를 그릴 수 있고,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관찰했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코끼리의 발톱만 본 개미가 거대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습을 그릴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런 현대과학 지식 조차도 잘 모르는 이들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자만하고 산다는데 있다.
더구나 하느님의 존재마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선택을 하는데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선택이 아니고 믿고 따르는데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다. 그 짧은 세월을 반성하며 살아도 턱없이 부족한데 주님을 부정하고 핍박하고 살면 어쩌자는 것인가.
국일현(그레고리오, 대전 공주 중동본당, 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방사선산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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