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선진 장묘문화 확산 노력을”
납골당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갈등 해결 위해
도심 외곽 교회묘원 장묘 개선사례로 조성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전국 화장률은 56.5%. 불과 10년 전 20%대에 머물렀던 것을 보면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증가다. 해마다 서울 여의도보다 넓은 면적이 묘지로 사용되고 있고 ‘묘지 대란’이라는 말이 이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수치다.
한국사회 장묘문화가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다. 매장 중심에서 화장을 통한 납골묘나 납골당을 비롯해 수목장, 해장 등 새로운 형태의 장묘방법도 속속 생겨나고 있는 형편이다. 수도권의 화장장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어 화장장을 지으려는 지자체와 지역주민이 대립하는 상황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매장중심의 장묘문화로는 더 이상 해결책이 보이지 않음을 감안한 교회 또한 이미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매장중심에서 납골중심의 장묘문화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교회 또한 매장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실례로 서울대교구의 20여 개 본당이 보유하고 있는 공원묘지들은 2015년이면 대부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고, 이미 만장(滿場)된 묘지의 관리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묘문화 변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
납골중심 장묘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교회의 움직임은 최근 몇 년 새 비교적 활발하다.
대구대교구가 이미 지난 1986년 군위묘원에 납골당을 만들었고 서울대교구 일부 성당에는 납골당이 조성됐다. 광주대교구도 지난 2001년 전남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에 납골당 ‘부활의 집’을 갖췄으며, 인천교구도 2002년 12월 인천 서구 ‘하늘의 문’ 묘원에 옥외 납골묘를 조성했다. 수원교구도 2005년 10월 안성공원묘원에 4만2000기 규모의 유해봉안소를 완공했으며 전주교구는 납골시설을 갖춘 금상동성당을 올 3월 축복했다. 이밖에도 부산교구 밀양본당과 원주교구 배론 성지에도 납골당이 들어섰다.
뿌리깊은 편견 깨는 인식 전환 필요
이처럼 각 교구가 납골중심 문화로의 변화를 발 빠르게 인지하고 직접적인 납골당 건립에 나서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단순히 매장할 곳이 없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만 납골당을 만드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김득수 전(前) 회장은 “각 교구의 묘원이 단순히 죽은 이들만을 수용하는 묘원으로서 뿐 아니라 산 이와 죽은 이들이 통교를 이루는 성지로 조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추모공원화 등 교회가 먼저 선진 장묘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사회에 문을 열어야만 도심 납골당의 님비(NIMBY) 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납골당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도심 외곽의 교구 묘원들과 달리 최근 들어 계획되거나 이미 완공된 도심 납골당의 경우는 ‘혐오시설’이라는 잘못된 인식 탓에 지역과의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교회가 이미 갖고 있는 도심 외곽의 수많은 묘원을 새로운 장묘문화 개선의 모범사례로 조성하는 데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심 종교시설에 관한 법원의 판례는 지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원의 판례에 앞서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은 지역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깨는 인식 전환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이미 갖고 있는 묘원을 활용하는 방법이 적절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울러 지나치게 상업성을 띠는 일부 사설·타종교 시설의 모습과 이에 따른 비판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이윤 보다는 죽은 이와 유가족들을 배려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해 장묘시설을 운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죽음에 대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죽은 이들의 공간을 정말 먼 세상으로 떠난 이들만을 위한 자리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수십 수백 년 간 이어 내려갈 뜻 깊은 시설이라면 죽음을 대하는 교회의 문화와 얼이 스며드는 시설로 가꾸고 이를 사회와 더불어 숨 쉬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후손 신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득수 전 서울 연령회연합회 회장
“열린 장묘시설 운영은 선교 일환”
“법원의 판례를 토대로 도심의 납골당도 시도해볼만 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매장방식으로 일관돼 있던 교회의 수많은 묘지를 순환식, 납골식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김득수 전(前) 회장은 납골문화가 아직 생소했던 지난 2002년 ‘천주교 납골문화 정착의 필요성’을 발표해 관심을 끈 바 있다. 김회장은 “묘지 부족은 여전하고 이에 따라 교회가 잇따라 납골당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회장은 “묘지 난을 해소하고 교회의 묘지를 보다 개방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함께 안장하는 가족납골묘 형태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교회묘지에는 신자들만 안장하도록 한 교회 묘지규정도 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가족납골묘 뿐 아니라 매장 후 육탈이 되면 개장해 납골하는 육탈납골 등 다른 나라의 모범적인 장묘문화도 교회가 앞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장묘문화 개선을 선도하고 열린 장묘시설을 꾸리는 것이 곧 선교의 일환입니다. 자기 조상의 묘가 있고 또 그곳이 누구나 마음 편히 찾아 쉬고 묵상하는 쾌적한 장소라면 어느 누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겠습니까?”
◎대구대교구 군위묘원
한국 교회 최초로 매장·납골식 함께 운영
중앙고속도로 군위I.C에서 내려 금성 지역으로 향하다 보면 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산69-1에 위치한 가톨릭군위묘원(관리소장 최상배)을 찾을 수 있다. 대구대교구에서 1986년 설립한 이 곳은 매장식과 납골식으로 함께 운영되는 한국 교회 최초의 납골 시설이다.
2001년 5월 리모델링 해 대지면적 7726㎡, 연건평 1900㎡, 지상 3층 규모를 갖춘 군위묘원 납골당은 1~2층 1만944기의 봉안함을 안치할 수 있으며, 3층에 성당과 분향실 등이 마련돼 있다. 고인이 된 신자 대상으로 운영되며, 비신자의 경우 가족 중 신자가 있는 고인만이 이 곳에 안치될 수 있다. 사용기간은 봉안일로부터 30년이며, 15년씩 2회 연장(재계약) 가능하다.
1980년대 당시 범물묘원(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현존)과 지금은 폐장된 감천리묘원(현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월성성당 일부를 포함한 인근 지역), 두 묘지를 운영했던 대구대교구는 신자수의 증가와 함께 묘지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자 1983년 공사를 시작해 1986년 군위묘원을 설립했다. 이후 정부 주택개발 사업에서 감천리묘원이 택지지구로 선정되자 당시 이 곳에 안장돼 있던 연고를 알 수 없는 3400여 위 분묘를 군위묘원으로 이장하기 위해 납골당을 설치했다. 그 가운데 10여 년이 지나도 유가족을 찾을 수 없었던 3234위의 유골은 2001년 2월 합장했고, 설립 이후 안치된 수를 합하면 군위묘원에 모셔진 봉안함은 현재 769기다.
군위묘원을 관리하고 있는 최상배(안토니오) 소장은 “이 곳을 설립한 이문희 대주교는 군위묘원을 또 하나의 선교의 장으로 염두해 뒀다”며 “신자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실제로 임종 직전에 대세를 받고 이 곳에 안치되는 고인도 많고, 가족 중에 세례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군위묘원의 경우 최근 한 달 평균 10여 기의 봉안함이 안치될 정도로 납골당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되고 있다.
군위묘원 관리를 총괄하는 대구대교구청 관리과 이명호(베네딕토) 과장은 “향후 10년 안에 교회 내 묘원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며 “순환식 매장법, 옥외 납골당 설치 등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납골당에 대한 신자 및 일반인들의 이해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053-250-3003 대구대교구청 관리과
사진설명
▶납골중심 장묘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교회의 움직임은 최근 몇 년 새 비교적 활발하다. 사진은 지난 2004년 12월 서울 흑석동성당 내에 건립된 납골당 ‘평화의 쉼터’를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가 축복하고 있는 모습.
▶군위묘원 납골당. 1만944기의 봉안함을 안치할 수 있다.
▶대구대교구 군위묘원 내 납골당 전경. 1986년 건립되어 매장식과 납골식이 함께 운영되는 이 곳은 한국 교회 최초의 납골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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