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아닌‘사랑퍼’죠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는 요즘, 행려인들에게 온도가 1도 내려가는 것은 극히 민감한 문제다. 특히 이들에게 있어 추운 날 따뜻한 밥 한 끼는 그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다.
취재 현장속으로. 이번 주에는 행려인들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무료급식소를 찾아갔다.
AM 10:00
서울 가락시장 내 위치한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의 집’. 멀리서 보니 이미 10여 명의 행려인들이 모여 있다. ‘이른 시간인데 벌써부터’라는 생각을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벌써 10시야’ ‘다 끓었으니 다른 거 올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주방 모습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밀가루 반죽하는 사람, 채소 다듬는 사람 등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맡은 역할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휘관(?) 역할을 하는 한 사람이 보였다. 하상바오로의 집 실무책임자 김제노베파 수녀. 인사를 하자 ‘아니 이렇게 바쁜 시간에 와서… 알아서 해요’란 답이 돌아왔다. 일을 도우며 얘기를 좀 들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꼬였다.
AM 10:20
어느새 식당에 남성 봉사자들이 들어왔다. 봉사자팀장 서정기(보니파시오·61)씨와 마주 앉았다. “여긴 목, 일요일 빼고 운영이 돼. 10지구내 쁘레시디움 소속 여성 단원들이 돌아가며 봉사를 하고.”
하루 준비는 언제부터 하는지 물었다. “9시부터. 주로 음식 관련일은 여성들이 하고 남성은 식당 탁자 정리, 음식 배달 등을 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을 이용하는 인원은 하루 250~300여 명. 점심이 제공되는 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였다.
“기도 시간입니다.” 정기씨가 크게 외쳤다. 이 시간 때쯤 기도를 한 후 점심을 미리 먹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준비한단다.
AM 11:10
식사 후 남성 봉사자들도 바빠졌다. 식탁에 수저와 컵, 물통이 올려졌다.
문 밖에는 50여 명이 행려인이 모여 있었다. 총무인 서정철(라파엘·57)씨가 귀띔했다. “저 사람들은 순번표를 받은 사람들이야. 일단 50명에게 나눠주거든” 식당에서 한 번에 식사 가능한 인원이 50명이기 때문에 처음만 순번표를 나눠주는 것. 이후 줄 선 순서대로 차례로 입장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고등학생 몇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친구들은 여기서 봉사하는 여성분들의 자제분들이야. 여기 상황을 알아야 하고 손발도 몇 번 맞춰봐야 봉사 할 수 있어.”
‘그래서 일을 안시키는 구나’란 생각을 할 때쯤 여성 봉사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기 국통 좀 옮겨주세요.”
AM 11:40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모인 행려인들이 100여 명을 넘었다. 양복 입은 이, 등산복 입은 이 등 연령대도 20~70세까지 다양했다.
행려인들에게 몇 가지 물었다. “여기 밥 맛있어요?” 한 행려인이 대답했다. “내가 부산도 가봤고 여기저기서 먹어봤는데 이곳은 A급이야. 전국 최고일걸.”
그때 정철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여긴 몇 가지 법이 있어. 법을 지켜야 밥을 먹을 수 있지.” 질서가 기본인 그 법이란 먹을 만큼만 먹는 다는 것. 남기면 다음부터 못 오게 한단다. 그래서 먹는 양을 소와 대로 나누어 제공하고 행려인들이 양이 많아 못 먹겠다 싶으면 음식을 회수하는 것도 이곳의 법칙 중 하나였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날의 음식은 그 날 아침 만드는 것.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AM 12:00
“표 있는 분 오세요” 정철씨가 외쳤다. 새치기 한 사람이 서씨에 눈에 들어왔다. 행려인들이 힘을 모아 뒤로 보냈다. 서씨가 주방을 보며 말했다. “거울 아래~ 소하나 대하나.”
오늘의 메뉴는 감자수제비와 두부·무 조림, 김치였다.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여기 밥 좀 더 줘요.” “반찬 가져가요.”
식사 후 행려인이 식판을 반납하면 주방에서는 설거지가 시작됐다. 식판이 150여 개 되기 때문에 바로 설거지를 해 음식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후 고등학생 봉사자들은 식탁을 닦고 수저를 갖다 놓았다. 자리가 나면 정철씨가 다음 행려인을 입장시켰다. 식판을 배달하다 입장한 행려인을 시야에서 놓쳤다. “여기 밥 안 나왔는데.” 부리나케 배달하자 행려인이 말했다. “초짜라 몰랐구나.”
바로 정철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끝에 대 2개~” 배달에 빈 물통 수거에… 체험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AM 12:30
한 행려인이 식사 후 식판을 주며 자신의 손목을 내밀었다. 흑갈색 묵주가 보였다. 말없이 어깨를 두드리며 떠나는 행려인의 모습에 잠시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소자 2개~” 배달하려니 소자 식판이 없었다. 석영씨가 주방에 말했다. “소자로 많이 해주세요.”
김제노베파 수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리와요. 밥솥 좀 옮겨줘.” 이내 김제노베파 수녀가 밖으로 나갔다. 행려인들이 얼마나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대충 인원을 파악해야 밥과 반찬을 어느 정도 더 내놓을지 계산되기 때문이다.
PM 1:00
시계를 보니 1시. 시계 밑 탁자에서 깔끔한 양복을 입은 신사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철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구에게나 밥을 주니 맛있어서 일부러와서 먹는 사람도 있어.”
행려인들의 줄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 봉사자들은 이미 남은 반찬을 정리하고 식기도구 등을 빠른 손놀림으로 설거지 하고 있었다.
앞 마당에서도 소수의 인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급식 시작 전 맨 앞줄에 서있던 행려인들이었다.
정철씨가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니까 저렇게 청소도 해주고 그래. 그리고 오늘은 수녀님이 영화도 보여주고 저녁도 사준다 그러시네.”
PM 1:30
주방 정리가 다됐다. 식당은 남성봉사자들과 행려인 몇 명이 함께 청소했다. 하상바오로의 집의 하루가 서서히 마감되고 있었다.
김제노베파 수녀와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도 봉사하러 와요.” ‘두 번은 못하겠다’란 생각을 하며 문 밖을 나서자 한 행려인이 말을 건넸다.
“잘가요~ 담에 또 오셔.”
◎사랑의 나눔 기다립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는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의 집’에서는 겨울철 행려인들을 위한 여러분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옷과 신발, 내복, 귀마개 등 행려인들이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물품이라면 무엇이든 후원 가능합니다.
※문의 02-402-1700, 도움주실 분 농협 016-01-174511 예금주 천주교 서울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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