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만나야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영성은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
나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 찾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 받아들여야”
이번 호 가톨릭인터뷰가 만난 인물은 안셀름 그륀 신부(Anselm Grun, 62, 독일 성 베네딕도 수도회)다.
‘21세기 영성의 대가’로 불리는 안셀름 그륀 신부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교구 전(全)·진(眞)·상(常) 교육관(관장 유혜심)이 개관 50주년을 맞아 초청한 자리다. 그는 11월 2~3일 연이틀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참된 자아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인간성과 영성의 통합’을 주제로 특별 영성 강연을 펼쳤다.
본지는 11월 3일 영성 강연에 앞서 안셀름 그륀 신부와 인터뷰를 가졌다.
▲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 ‘영성’이란 영적인 힘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성’은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고, 그 분의 말씀이 내 안에서 들리게 됩니다.
▲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스스로 ‘영성’이 부족하다고들 합니다. 잃어버린 영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외부와의 관계만을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영성을 회복하는 길은 내가 나 자신의 삶에서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입니다. 아울러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진리를 직시하고 이를 지키려 할 때 영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영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제 때 식사하기 등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내가 나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바깥으로 활동하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만 선호하지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 때, 하느님도 알 수 있습니다.
▲ 급속한 산업화 사회를 겪으며 현대인들이 두려움과 우울증 등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두려움과 우울증은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고, 빠른 결과를 얻으려는 데서 발생한 부작용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에 대해 의학적 치료만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과 우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영혼이 옳은 길을 찾도록 하는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증상을 겪음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 치유를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세계와 자주 만나야 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바쁜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능력’이라고 합니다. 혼자 눈을 감고 조용히 묵상하며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고 가장 소중한 자신을 만나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 신부님께서는 동양의 명상법인 불교의 ‘선(禪)묵상’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불교 ‘선 묵상’을 배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가톨릭의 묵상은 불교의 참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선 묵상’은 3세기 가톨릭교회 수도자들이 도입한 것입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지금도 이 묵상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방법만 불교의 것을 빌려왔을 뿐 기도는 하느님께 드립니다. 타종교에 열린 마음을 갖고 대화할 수는 있지만, 종교를 뒤섞어서는 안됩니다.
▲ ‘선 묵상’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 동방교회 전통 중에는 ‘예수기도’란 것이 있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숨을 들이쉬면서 ‘예수님’, 숨을 내쉬면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반복하며 기도하는 방법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침묵 속에 잠기는 것입니다.
▲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신부님은 분단과 통일을 겪은 독일 국적을 갖고 계십니다. 남북한 관계 회복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 과거 분단되기 전 독일 국민 대부분은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분단이 되면서 동독의 경우 국민의 80%가 신앙을 잃었습니다. 신앙을 잃으면서 내적으로 공허하게 됐고, 그 자리에 신나치주의나 극우주의 같은 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독일은 통일 후에도 이 부분이 큰 문제가 됐습니다. 남북한도 통일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내적인 공황 상태를 겪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 시대를 맞는 한국인들은 그러한 북한 주민들을 이해하고, 대화하겠다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통일은 국민 개개인이 마음의 문을 열고 열린 자세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 한국은 내달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신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상이란 무엇입니까?
-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과 일치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일치한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 속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스스로를 자비롭게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잘못을 범했을 때 스스로 힘들어하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남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아울러 평화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을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 저마다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읽어내고 그것을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국민에 대한, 이 사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안셀름 그륀 신부는
1945년 독일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난 안셀름 그륀 신부는 1964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에 입회했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수많은 피정 및 영적 지도를 하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이를 통해 각종 영성 강좌와 심리학 강좌를 두루 섭렵했다. 1976년 첫 영성 책 ‘깨끗한 마음’이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200여 권이 출판돼 28개 국어로 나왔으며 총 1400만 부가 판매됐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동양의 명상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성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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