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잘 하게 되었고,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고, 인터넷도 잘 못하고, 정치 경제 등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전 국민이 즐기는 축구에 대해서 조차 모르고….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나에게 말한다. “프로골퍼 박세리씨도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쓴 경험이 있지만 그 분야에서는 최고다. 정원씨는 정원씨 분야에서 최고다”.
그동안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다져온 생각 중 하나는 ‘배우는 작은 철학자’라는 것이다. 매일 밤 누군가에게 인생은 아름답고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니까. 돈이나 인기, 명예에 매달리기보다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한다는 건 참 가치있는 일이다.
어떤 관객이든 내 연기를 보고 단 한명이라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작은 소망이 내가 매일 밤 소중한 가족들을 남겨둔 채 무대에 서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신앙을 갖게 됐다. 그전에는 개신교회를 다녔다. 가장 큰 이유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 가족들은 물론 친정 어머니와 가족들은 가톨릭신자였다. 이제 하나의 신앙으로 다져진 우리 가족,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늘 내 안에 있고 늘 든든하게 생각할 분이 계신다는 것이 기쁘다. 주님의 기도만 외워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세례 받을 때도 내가 누군가와 약속을 했다는 책임감이 가장 컸다. 우리 딸 수아는 율리안나라는 본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수아도 항상 하느님 말씀대로 살면서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늘 배려하고, 선행을 실천하길 기대한다.
나는 사실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많은 봉사에 나서진 못한다. 하지만 교회가 하는 일에, 특히 생명을 수호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홍보대사 위촉은 수락했다.
뱃속에 살아있는 아이는 생명이다. 돈이 없고 무언가 물질적인 것이 부족해도 생명은 태어나서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또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한다.
2001년 동료배우들과 인도 여행을 하면서, 대여섯살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갓난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 펑펑 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같이 동행한 스님이 “정원씨는 참 이기적이다. 왜 저들을 불행한 사람들로 만드느냐. 저들은 천민으로 태어났고 평생 저렇게 살지만,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방이 아홉개가 있다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 단칸방에 10명의 가족이 살아도 그들은 웃으며 지낸다. 행복의 잣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생애 최고의 작품을 만났을 때 불꽃처럼 사라지길 바라며, 불꽃처럼 사라진 후에는 뮤지컬 배우를 길러보고 싶다. 전국의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뮤지컬을 꿈꾸거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 가르칠 생각이다. 무대에 오른 그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자식을 기르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면서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그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풀어낼 때, 내가 아마 뿜어내지 못했던 애정과 열정이 무대에서 나올 것 같고, 그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할 것 같다. 내 말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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