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구속력 없지만 국제적 도덕 규범 마련…“사형제도 폐지 향한 역사적 전진”
【유엔본부, 외신종합】유엔이 사형제의 궁극적 폐지를 목표로 국제사회가 사형 집행을 유예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유엔 총회의 인권문제 등을 다루는 제3위원회는 11월 15일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87개 회원국이 공동 제안한 ‘사형 집행 유예(moratorium)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99표, 반대 52표, 기권 33표로 통과시켰다.
유엔 총회의 이번 사형 집행 유예 결의안 통과는 회원국에 강제적 구속력은 없지만, 또 하나의 국제적인 도덕적 규범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유엔은 지난날에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 폐지 결의안 통과를 시도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국가들에 의해 무산된 바 있다. 1994년에는 이탈리아 등의 발의로 유엔에 제출됐으나 근소한 표차로 부결됐다. 또 1999년에는 결의안이 통과됐으나, 반대파의 수정 요구가 받아들여지며 결의안 채택을 포기한 적도 있다.
이날 회원국 대표들은 결의안을 통해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사형제를 유지하는 모든 국가들은 궁극적인 사형제 폐지를 목표로 사형 집행을 연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사형제를 유지하는 모든 국가들은 사형 선고가 내려질 수 있는 위법행위의 수를 제한하고 줄여야 한다”며 “사형제 국가들은 향후 사형 집행 제한에 관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동시에 유엔 사무총장에게 사형 집행 관련 정보와 기준 준수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총회 제3위원회의 결의안 채택은 다음 달 12월 열릴 유엔 총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지만, 전 세계 192개 회원국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위원회에서 표결을 통해 통과된 만큼 사실상의 채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52개국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나, 향후 그들의 반발을 최소화해야 이번 ‘사형 집행 유예 결의안’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과 싱가포르, 이집트 등 이슬람권 국가들이 이번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의안 반대국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결의안은 사형제를 반대하는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다른 나머지 국가에 관철시키는 행위”라면서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이번 결의안이 유엔 총회를 더욱 양분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아울러 “사형제는 근본적으로 각국의 상황에 맞춰 결정될 형사상의 문제”라며 “이번 결의안은 주권국가의 내정을 간섭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법적으로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번 결의안 표결에 기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이후 올해로 10년째 사형집행을 유예해오고 있으며, 12월 29일까지 사형집행이 없으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된다. 따라서 이번 유엔의 결의안 채택으로 국내에서도 사형제 폐지 여부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현재 세계 133개국이 사형제를 법 또는 실행 면에서 폐지한 반면, 66개국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결의안 통과에 대해 사형제 폐지를 향한 역사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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