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근무를 하면서 본당 신부 때 보다 더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엔 병원하면 의사 간호사, 약사… 이런 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병원이 운영되기 까지는 많은 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저와 제일 먼저 인사하는 분은 주차요원 아저씨입니다. 고개만 끄덕이며 형식적으로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거수 경례를 하시며 환한 웃음으로 “신부님,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인사합니다. 그러면 저도 거수 경례로 화답합니다.
점심 먹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드리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매주 주, 야간 근무를 교대로 하시는데도 매일이 즐겁다고 하십니다.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하고 물으니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이지요. 뭐 특별한 일이 있어서 기쁘나요. 이런 직장이라도 있으니 좋고, 자식들 건강하게 자라니 더 좋지요” 하십니다. 평소에 강론대에서 늘 하던 말을 아저씨께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아침을 먹고 엘리베이터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 서로 반갑게 인사합니다.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흰 걸레로 벽면을 너무도 열심히 깨끗이 닦으시더라고요 . 제가 보기엔 별로 청소할 게 없는 것 같아서 “때가 많이 나오나요, 제가 보기엔 깨끗하기만 한데요?”라고 물으면 “아이고. 신부님, 안보여서 그렇지 이렇게 빡빡 밀면 시커먼 때가 얼마나 많이 나온다고요.
이렇게 깨끗이 해야 환자 분들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쾌적함을 느끼고 기분 좋을 것 아닙니까?” 하십니다. 올 여름 얼마나 무더웠습니까? 아침 시간 땀을 한 바가지 흘리시면서 “이렇게 땀 흘리면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하시며 기쁜 얼굴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누가 보든 안보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입니다.
보이지 않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병원 구석 구석을 점검하고 정비하는 일은 시설, 환경부 직원들 몫입니다. 큰 행사 땐 행사 무대 장치에서부터 냉난방시설, 때론 병원 주변 잡초 제거까지 안하는 일이 없고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지하 3층에 근무하다보니 공기도 별로 안 좋고 근무조건도 좋지 않지만 병원의 궂은 일은 다 하시는, 보이지 않는 참 일꾼들입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들고 방문하면 “신부님, 뭔 돈이 있으세요?”라고 말하시면서도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어떤 곳이든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 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공동체가 잘 유지되듯, 병원도 어려운 곳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 덕분에 유지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되면서 그 분들의 수고로움에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또한 작은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양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그 양들은 신자 만이 아니라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모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가 찾아가야 할 곳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곳 저 곳을 불러주지 않아도(?) 이게 사목이려니 하며 오늘도 열심히 찾아갑니다.
최경식 신부 (마산교구 병원사목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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