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꾸준히 읽고 맛들이는 것이 최선”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된 공부
‘나무’에 집착하지 말고 ‘산’을 보는 시야 가져야
11월 25일부터 12월 1일은 한국 천주교회가 특별히 제정한 ‘성서주간’이다. 이번호 가톨릭인터뷰는 성서주간을 맞아 광주가톨릭대학교(총장 정승현 신부) 성서신학 교수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를 만났다.
김혜윤 수녀를 처음 만난 사람은 세 번 놀란다.
첫째 그의 수려한 말솜씨 때문이다. 뛰어난 표현력과 적절한 언어선택, 그리고 질문의 핵심을 파악해 답변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쉬운’ 말만 쓴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내내 기자를 이끌어 나갔다.
둘째 그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사춘기 소녀의 미소를 짓다가도 갑자기 산전수전 다 겪은 노파의 표정을 보여주는가 하면, 찜질방에 놀러온 아줌마처럼 수다를 떨다가도 근엄한 교수님의 훈계조 말투도 나온다.
셋째 그는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다. 수도자는 예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에 가끔씩 말괄량이 소녀 같은 웃음을 지을 때면 여느 연예인 못지않다. 깨끗하고 뽀얀 우윳빛 피부도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전남 나주시 남평읍 소재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김혜윤 수녀는 스스로를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건강하게 태어났고, 성소에 응답해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또 수도 공동체 식구들의 격려와 후원에 힘입어 당시로선 드물게 로마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수도자로서의 소중한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본당 수녀’도 경험할 수 있었고, 현재는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교수’직에 몸담고 있잖아요. 하느님께서는 정말 저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수도자라니 얼핏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수녀는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로마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를 받았다. 또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성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가톨릭대학교와 서강대학교, 교리신학원 등지에서 구약성경을 강의하다, 지난 2003년 3월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교회가 인정하는 신학과목의 정식 교수다. 우리 교회 안에서 수녀로서 교수직까지 오른 사람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배은주 수녀(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와 김수녀뿐이다.
이쯤 되면 자신의 과거를 적당히 신비하게 포장할 법도 한데, 그는 지나치게 겸손하고 솔직했다. 과거도 현재도 별로 미화하지 않았다.
김수녀는 로마에서 공부할 당시 한국의 수업 방식과 너무 달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고, 공부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으며, 때로는 ‘왕따’도 경험해 봤다는 등의 과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로마 유학 기간은 제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외롭다 보니 성경 속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마음에 와 닿고, 제 몸 안으로 빠르게 흡수되는 것이에요. 그건 정말 놀라운 체험이었답니다”.
‘성서주간’을 맞아 ‘성서’에 대해 묻고자 ‘성서신학 박사’를 만났으니, 본래의 계획에 착수했다. 우선 신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이상적인 성경공부 방법’에 대해 물었다.
김수녀는 무엇보다 무조건 읽고, 쓰고, 외우는 주입식 성경공부 방법에 대해 지적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십 수 년 영어를 공부하고도 외국인을 만나 써먹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한국 교회 신자들은 무조건 많이 읽고, 쓰고, 잘 외우면 상을 받는 풍토에 젖어 있습니다. 외국인과의 대화가 영어공부의 최종 목표이듯, 성경공부도 성경을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입니다”.
그는 성경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맨 앞부분 ‘창세기’ 편만 마르고 닳도록 잃다가 끝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산’을 보고 ‘나무’를 봐야 하는데, ‘나무’ 하나하나를 세세히 관찰하다가 결국은 산에 오르지 못하는 모습을 애석해했다.
이런 점에서 김수녀가 최근 펴낸 책 ‘쉽게 풀어쓴 구약성경, 그 두 번째-역사서1’(생활성서사/216쪽/9000원)은 그가 권하는 성경공부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는 이 책에서 구약성경 역사서 전반을 개관한 후, 역사서를 신명기계와 역대기계로 구분해 각각에 대해 좀 더 세분해서 고찰한다. 먼저 역사서 전체를 소개하는 가운데, 차츰 범위를 좁혀 가면서 각 권에 대한 해설로 마무리 짓는 식이다.
김수녀의 표현을 빌자면 스스로 맛보고 쉽게 소화시킬 수 있는 ‘이유식’ 같은 책이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해 봄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모세오경’편을 선보인 바 있다.
“성경을 무조건 읽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꾸준히 읽고 맛 들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조금씩 공부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아, 성경을 통해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구나’하고 느껴지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 이후에는 절대로 성경을 놓지 못할 거예요”.
인터뷰 말미, 문득 ‘40대 수녀 교수와 20대 남자 신학생들은 어떻게 교감을 나눌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김수녀는 이에 대해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 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래도 교감이 어려우면, 신학생들과 우르르 남평읍내로 몰려나가 치킨도 시켜먹고, 맥주도 마신다고 했다.
실제로 광주가톨릭대학 신학생들은 김수녀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누나 같은 따스함’과 ‘어떤 잘못도 감싸줄 것 같은 엄마 같은 포근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평했다. ‘친절한 혜윤씨’는 인기 만점일 수 밖에.
마지막 질문. ‘꿈’이 뭐냐는 기자의 ‘우문’에 김수녀는 ‘현답’을 내놓았다.
“저는 교수이기에 앞서 수도자며, 수도자기에 앞서 여성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훌륭하고 인자한 ‘아버지’처럼 성경을 가르치는 분들은 많이 계십니다. 기회가 계속 허락된다면, 저는 차근차근 따뜻하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엄마’의 방법으로 성경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김수녀는 신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느낌이 자신을 평화롭게 만든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윤 수녀. 그는 앞으로 환갑을 지나 칠순, 팔순을 맞아도 여전히 지금처럼 소녀의 모습일 것 같다.
■ 김혜윤 수녀는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소속으로 가톨릭대학교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원,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 ‘봉인된 시선을 넘어-묵시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성경 여행 스케치’, ‘생손앓이’ 역서로 ‘지상에서의 첫 번째 사랑-렉시오 디비나 여성 모임을 위한 16가지 제안’, ‘저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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