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신앙 모범 보인 ‘그리스도 닮은 목자’
아랫사람 배려하고 업무에선 철두철미
검소하고 소탈하며 겸손한 사제로 정평
학창시절 때는 “바른 소리 잘하는 친구”
“말 대신 삶으로서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분이며 불필요한 형식보다는 내용과 실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제4대 부산교구장에 임명된 황철수 주교의 지인들은 그에 대해 ‘소탈하고 검소한 분’ ‘아랫사람을 배려하고 높여주시는 분’ ‘업무에서는 원칙적이고 철두철미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삶은 어린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신부, 주교의 삶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황주교는 1953년 경남 밀양 지동에서 부친 황상준(도미니코 87)옹과 모친 곽복조(골롬바 81)여사 사이의 2남2녀 가운데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뿌리 깊은 교우 가정으로, 초대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와 대구대교구 7대 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를 비롯 9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한 신앙의 명가 집안에서 성장한 황주교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과 집안의 영향을 받아 신앙심과 자립심이 남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첫째로 알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시던 부모님의 삶과 신앙을 보며 어린시절 한번의 삐뚤어짐도 없이 적극적으로 교회에 봉사하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으며, 초등학교 입학 이후 부모님이 한번도 학교를 찾은 적이 없을 만큼 뭐든 스스로 척척 해냈다. 이런 황주교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신부가 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황주교는 당시 본당의 정가오로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와 큰이모의 적극적인 성원 덕에 밀양중학교 1학년 재학 중 대구 선목중학교로 전학, 사제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농부의 아들로 자라서일까. 황주교는 신학생 시절, 그리고 주교가 되고 교구장이 된 지금까지도 근검, 절약을 몸소 실천했다.
대신학교 동기인 대구대교구 총대리 조환길 주교는 “황주교님은 신학교 시절 새 옷을 사 입는 것을 보지 못할 정도로 검소하고 소탈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바른 소리를 잘하는 정의감 넘치고 원칙적인 분 이었다”며 “강직함과 유함을 한 몸에 지닌 황주교님이 교구민들의 아버지로서 더 많은 이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만큼 가슴 넒은 교구장으로 신자들에게 다가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4년 간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황주교는 1983년 2월 5일 사제품을 받고 망미본당 보좌로 첫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황주교로부터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던 정경수(대건안드레아.망미본당.교구평협 부회장)씨는 “1983년 황주교님께서 망미본당 보좌신부로 첫 부임을 하신 후 본당에서 뵐 때 마다 아주 검소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어떤 신자들에게나 친절하고 그러면서도 몸에서 우러나오는 권위와 위엄이 있으셨다”고 전했다.
황주교는 2006년 1월 17일 부산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됐다. 주교가 된 후에는 어땠을까. ‘여전’했다.
주교가 되면 주어지는 승용차와 운전기사를 거절했다. 그 대신 아직도 6년 된 소형 자동차를 직접 운전한다. 물론 세차도 직접한다. 차를 바꾸고 기사를 두자는 주변의 권유에 황주교는 “큰 차를 타보니 주차하기도 힘들어요. 운전은 내가 기사보다 더 잘합니다”라고 말해 더 이상 할말이 없게끔 만든다.
자신은 이처럼 검소한 삶을 실천하면서도 다른 신부들에게는 “신부님은 편한 차 타세요”라며 편안하게 해준다. 또 황주교는 비서를 별도로 두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도 직접 받는다.
황주교의 취미는 독서와 등산이다. 웬만한 신자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황주교는 하루 3~5권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황주교는 교회 신학서적부터 문학, 과학도서, 베스트셀러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황주교는 주 2회 정도 가까운 산에 오른다. 보통 혼자 등산을 다니지만 가끔 교구청 사제들과의 등산도 즐긴다. 등산 준비는 평소 입던 양복바지에 신발만 운동화로 갈아 신으면 끝. 함께 등산을 다니는 성소국장 주영돈 신부는 “주교님은 어린 후배 사제들보다 훨씬 산을 잘 타셔서 오히려 저희가 한번 쉬어가자고 부탁한다”며 “꾸준히 등산을 하신 덕분에 특별한 운동 없이도 건강을 유지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교구장이었던 정명조 주교 선종 이후 황철수 주교는 교구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했다. 그 기간 황주교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확실히 보여줬다. 바로 ‘이웃과 함께, 사제들과 함께 교회의 기쁨을 나누는 것.’
올해 부산교구는 설정 50주년을 보내며 교회 내외적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행보를 보여 주었다. 가장 기본적 교회 정신인 이웃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부산교구의 중심에는 공석인 교구장을 대신해 보이지 않게 혼신의 노력을 다한 황철수 주교가 있었다.
황주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과 화합하며 지역 내 어려운 이웃돕기에 두 팔을 걷었다. 대외적인 큰 행사를 없애는 대신 절약한 비용을 불우 아동을 위한 기금으로 썼고,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이끌었다.
최근 황주교는 주교의 권한을 신부들과 나누고 있다. 부산교구 내 108개 성당을 혼자 사목하기 힘든 까닭도 있지만, ‘꼭’ 주교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본당신부나 지구장 신부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 결과 최근 중앙본당, 수정본당 등에서 가진 견진성사를 주교 대신 본당 신부가 집전하게끔 했다. 내년에는 주교의 본당 사목방문을 지구장에게 이임할 계획도 갖고 있다.
교구 홍보전산실장 김윤태 신부는 “황주교님은 ‘사제는 곧 동반자’라고 말씀하시며, 주교 업무 중 신부가 할 수 있고 더 잘할 것이라 생각되는 일은 본당신부들에게 위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구청 입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 먼저 따뜻한 격려의 인사를 건네는 황주교. 교구청 직원들의 세례명을 외워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주는 황주교는 청소년들을 교회의 미래이며 희망으로 여기며 주일학교 행사에 반드시 참석한다. 또 “주교님 같이 폰카 찍어요”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에게 “오냐~ 찍자~”하며 살인미소(?)로 포즈를 취하고 아들뻘 되는 초년생 신부에게 존대를 잊지 않으며 상대를 배려한다.
‘그리스도 하느님의 힘’(CHRISTUS DEI VIRTUS, 1코린, 1, 24)을 사목표어로 삼아 그리스도를 닮은 사목자로 살아온 황주교는 교구민과 함께 100년을 향한 발전과 쇄신의 길을 걸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설명
▶선목중학교 재학 당시 단체사진. 원 안은 중학생 시절 황주교 모습.
▶1983년 사제품을 받은 황주교가 첫 미사 봉헌 후 신자로부터 축하선물을 받고 있다.
▶1980년 독일 유학 중 설산을 등반하는 모습. 황주교는 등산을 좋아해 지금도 주 2~3회 인근에 있는 산에 오르며 건장을 유지하고 있다.
▶황철수 주교가 올해 4월 7일 성분도 빛둘레 공부방을 찾아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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