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안에 ‘한가족’ 이룬다
영어미사 마련해 형제적 사랑 나누고
교구 의사·약사회와 함께 의료봉사도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는 지난해 10월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훈령을 발표했다.
훈령은 오늘날 이민 현상의 원인 파악과 이민이 사회와 가정에 미치는 문제점들을 조명한다. 특히 훈령에서는 이민을 위한, 이민자들과 함께하는 사목이 될 수 있도록 사목 조직들의 통합과 이민자들의 다양성과 영적 문화적 유산을 존중하면서 이민자들을 교회의 일반사목에 포함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훈령이 발표되기 전 제주교구는 이민자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었다. 관심의 발로는 교구 이주사목위원회(회장 김민호, 지도 임문철 신부)였다.
시작
이주사목위원회는 2004년 2월 15일 설립됐다. 설립 후 이들이 가진 고민은 이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신앙뿐이었다. 그 해 3월 7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영어미사’가 처음으로 봉헌됐다.
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주례한 이날 미사에는 교구 전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70여 명의 이주민들이 참여했다.
특히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필리핀 출신이라 가톨릭을 국교로 하고 있는 그들에게 타국에서의 신앙생활은 단비와도 같았다. 미사 후 간식을 나누는 시간 또한 값진 것이었다. 신앙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위로하는 모습, 이것이야 말로 이주사목위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였다.
삶속으로
이주민들이 타국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의료문제다. 일부 이주민들은 불법체류인 탓에 제대로 진료를 받기도 어렵고 산업 연수생으로 왔다하더라도 진료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주사목위원회는 2004년 4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무료 클리닉’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가톨릭의사회(회장 한경훈)와 라파엘약사회(회장 성길홍)가 손을 맞잡았다. 매주 주일 오후 3시 두 단체는 이주민들을 위해 현장에서 바로 진료하고 처방전을 제공하고 있다. 무료 클리닉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호응도가 무척 높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단체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시작한 ‘방문 클리닉’은 의사 1인과 약사 1인이 함께 이주민들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으로 찾아가 진료, 처방을 하는 것이다.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 이뤄지는 방문 클리닉을 통해 교구 전역의 이주민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받았으나, 현재 방문 클리닉 활동은 뜸한 상태다. 작업장의 한국 사장들이 방문 클리닉 활동을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내년부터 방문 클리닉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라파엘약사회 회장 성길홍(요셉)씨는 “앞으로 가톨릭의사회와 함께 더욱더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활동할 것”이라며 “이주사목에 대한 전문적인 마인드를 갖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이주민들과 나누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시대
이주사목위원회는 다문화 시대에 걸맞는 이주사목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이주민들과 그의 가족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교회의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외국인근로자 야유회를 비롯해 ▲외국인근로자 송년의 밤 ▲이주민을 위한 찻집 ▲1년 두 차례의 문화탐방 ▲야유회 ▲한마당 축제 ▲전통혼례 체험 등을 실시해오고 있다. 또 이주민들을 위한 적극적인 사목을 위해 이주사목 봉사자 교육도 병행해왔으며 서귀포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을 위한 영어미사도 신설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10월 열렸던 ‘제주 다문화가정의 자녀교육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5주간 제주시와 서귀포 지역으로 나뉘어 열렸으며 제주지역에서의 다문화 이해, 멘토링 기법, 결혼이민자의 아동 보육 역량 강화 방안 등 이주민들이 한국에서의 삶을 정착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교육으로 진행됐다.
프로그램 이수 후 참가자 중 50명이 멘토(조언자)로서 이주민들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들은 향후 결혼 이민자 및 그 자녀들을 신앙적, 정신적으로 돌보는 도우미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인삼각’의 달리기
다양한 활동으로 이주민들을 위한 사목활동에 주력하던 이주사목위원회도 고민은 있었다. 바로 이주민들을 위한 공간 부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즉시 해결됐다.
지난 6월 제주시 삼도2동 102-2 현지에서 교구장 강우일 주교 주례로 ‘제주 외국인쉼터’ 개소식을 가진 것이다.
쉼터 개소로 인해 각기 다른 곳에서 이주민들을 위해 활동하던 이주사목위원회와 가톨릭의사회, 라파엘약사회 사무실이 함께 하게 됐다. 이로 인해 이주민들은 현재 무료 진료와 고충상담 등에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쉼터 개소와 함께 제주에 시집와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 17명은 자원봉사자들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자매결연이 더욱 뜻 깊은 것은 결혼이주여성들이 타국에서의 새로운 친정어머니를 모시게 돼 한결 편한 한국 생활을 한다는 데에 있다.
임문철 신부(이주사목위원회 지도)는 이날 “외짝 교우인 결혼이주여성 신랑과 남성 자원 봉사자들 간에 어버이 관계를 맺어주는 운동도 벌이겠다”고 말했다.
풀어놓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사목위원회는 내년에도 이주민들을 위한 알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 중 ‘결혼이민자 가정을 위한 아버지 학교’가 이채롭다. 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승인을 받아 내년 8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이주사목위원회는 현재까지 일방향 적인 사목을 펼쳐오지 않았다. 한걸음씩 더디고 힘들지만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사목을 펼치는 이주사목위원회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이주사목위원회 김민호 회장
“약자의 편에 서서 든든한 벗 돼야죠”
‘우리 사회 보통사람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
이주사목위원회 김민호(마티아, 제주교대 교수) 회장이 내린 이주민에 대한 정의다.
주로 3D 업종에 종사하는 이주민들을 보며 그가 느낀 것은 한 가지였다.
‘가톨릭 신자로서 도움을 줘야한다’는 것.
특히 이주민 대부분이 필리핀 출신이다 보니 그러한 생각을 더 가지게 됐다고 했다.
“1주일에 1번이라도 만나서 안부를 묻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소중한 시간입니다. 또 가톨릭이 국교인 그분들이 신심과 신앙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이를 위해 김회장은 자원봉사자와 이주민들과의 교류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의지할 곳 없는 그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은 큰 힘이 됩니다.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열악한 산업 환경, 체불 임금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주민과 결혼이주여성을 돕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했다. 특히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결혼이주여성의 삶의 질 향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심적으로 돕고 싶지만 법률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이는 타종교와의 협력과 우리의 내적 성숙이 우선시 돼야 하는데…시기상조인 면이 있죠.”
김회장은 이는 제주뿐만이 아닌 전국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이주민들이 어디에서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조건을 갖추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지속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주민들을 위한 전담 인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적 자원의 부재가 안타깝습니다.”
김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주사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마음만 앞섰지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있어서는 누구나 힘겨워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문제는 교구 가톨릭의사회와 라파엘약사회가 이주민들을 위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다른 분야 쪽은 전무한 상태라 더욱 아쉽다는 김회장.
“이주민들을 위한 모든 분야에 신자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타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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