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 낯설지 않다. 분명 어디선가 경험해 본 일이 있다. 기억을 더듬었다. 가물가물, 잊혀졌던 20년 전 과거가 되살아난다. 그때도 초겨울이었다. 강원도 산골 소년이 학교에 가지 않고 무작정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말이 터미널이지 버스 한 두 대가 고작인 시골 버스정류장이다. 떠나고 싶었다. 아무 곳이라도 좋다.
소년은 문득 1년 전 경기도 안양 어느 성당으로 떠난 수녀님을 생각해낸다. 소년은 그렇게 훌쩍 수원행 버스에 오른다. 수원에 도착한 소년은 전철을 타고 안양에 도착 한 성당에서 수녀님을 만날 수 있었다. 행복했던 만남이 지나고, 헤어질 시간. 수녀님이 “이곳까지 왔으니 수리산성지에 가서 기도를 하고 가라”고 한다. 소년은 1시간을 걸어 수리산성지에 올랐다. 그리고 기도했다. “주님, 힘듭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깜박 잊고 묵주를 준비하지 않았다. 손가락 묵주라도 돌릴 수 밖에…. 안양역에 내려 걷기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다. 도심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환희의 신비가 끝나간다. 공기가 달라졌다. 성지에 가까워 오고 있다는 증거다.
수리산성지에는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성인의 묘소가 있다. 수리산에 교우촌을 개척한 최경환 성인은 우리나라 두 번째 본토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아버지. 1839년에 이곳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배교하지 않고 순교했다.
성인의 반려자, 즉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 1800∼1840)의 이야기는 더더욱 가슴을 울린다. 이성례는 남편 그리고 다섯 자녀와 함께 옥에 갇힌다. 부모와 아이들을 함께 옥에 가두는 일은 당시 국법에도 없던 일. 하지만 아들을 신부로 유학 보낸 골수 서학쟁이 집안 만큼은 예외였다. 희정(15), 선정(12), 우정(9), 신정(6), 그리고 세살배기 젖먹이와 함께 옥살이를 하는 어머니는 속이 타들어간다. 가장 큰 문제는 굶주림이었다. 밥 한 덩어리가 나오면 어머니는 굶고 아이들을 먼저 먹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먹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세 살 막내가 어머니의 빈 젖을 빨다 굶어 죽은 것. 이성례는 실신을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머지 네 아들도 모두 굶겨 죽일 판이었다. 그래서 “배교하겠다”고 했다. 어머니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풀려난 이성례는 아이들과 함께 동냥을 다닌다. 그러다 이성례는 곧 남편을 다시 기억해 낸다. 신앙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감옥에 가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이 동냥을 나간 어느 날, 이성례는 그렇게 다시 남편의 곁으로 돌아왔다.
4형제가 옥으로 찾아와 울며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는 등을 돌리고 앉았다. ‘다시는 배교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4형제는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4형제는 동냥을 다니며 감옥에 있는 부모에게 음식을 넣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4형제는 어머니에 대한 형 집행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형제는 부지런히 동냥을 다녔다. 그렇게 모은 얼마 되지 않는 돈과 쌀을, 형을 집행할 망나니에게 주며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아프지 않고, 단칼에 하늘나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이들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인 망나니는 밤새 칼을 갈아 이튿날 용산 당고개에서 이성례의 목을 단칼에 자른다. 이성례는 그렇게 큰 고통없이 하늘나라로 갔다. 최경환 성인의 시신은 옥리들의 배려로 수리산에 안장할 수 있었지만, 이성례의 시신은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4형제가 참수 직후, 당고개 아래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찾았지만, 참수 당한 시신이 너무 많아 찾지 못한 것이다.
안양역에서 도보로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끝내자 발은 어느 덧 성지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고풍스럽게 재현해낸 최경환 성인의 생가를 둘러 보았다. 성지 개발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차재훈 신부의 땀이 느껴졌다. 생가를 나와 산을 올라 성인 묘소를 참배했다. 성인 말씀이 가슴을 울렸다. “형제 자매들이여, 용기를 내시오. 하느님의 천사가 황금자로 우리의 발걸음을 재고 있습니다.”
성지를 내려오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 순례 문의 031-449-2842 ■ 미사 및 피정, 특강 주일미사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 평일미사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에 있다. 특히 금요일 미사는 ‘신앙 선조들의 삶을 체험하자’는 취지에서 라틴어 미사로 봉헌된다. 또 매주 목요일 오후 9시30분에는 성시간이 있고, 금요일 오후 1시30분에는 참회의 날 프로그램이 있다. 매월 첫 토요일 10시에는 가정 성화 특강이, 매월 셋째 월요일에는 성경 관상 수련회 피정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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