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순결 고스란히 느끼다 …
로마 서상덕·곽승한 기자
■ 한국주교단 공식 일정
‘무덤들을 향하여(앗 리미나)’
한국 교회 주교들이 나선 무덤(리미나)으로 향한 길. 주교들이 향한 ‘리미나’는 보편 교회의 두 기둥인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무덤을 일컫는다.
전 세계 주교들이 보편 교회와의 친교와 일치를 위해 성 베드로와 바오로의 묘소를 참배하고 교황을 알현하는 사도좌 정기방문(앗 리미나)은 두 사도의 숭고한 소명을 상기시키는 역사의 저장고로 후세에 이어져오고 있다.
교회의 주춧돌이라 할 두 사도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 닿을 수 없었던 부분이 있기 마련. 그래서 ‘앗 리미나’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채워나갈 수 없는 보편 교회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을 확인하고 다시금 주님의 나라를 향한 숨을 고르는 자리다.
한국 교회 주교단은 어떤 마음으로 사도들의 무덤을 향해 나섰을까.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길은 한국 교회 한가운데서 들숨과 날숨으로 함께 하시는 거룩한 현현(顯現)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한국 주교단은 교황청 ‘성녀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에 머물며 방문 일정을 이어갔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Conclave)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곳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되는 곳.
◎…한국 교회에서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시복시성 대상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시복 절차와 관련해 11월 27일 이뤄진 주교단의 교황청 시성성 방문이 관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는 시복 추진현황을 보고하고 시성성 관계자들과 향후 일정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시성성 장관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스(Jose Saraiva Martins) 추기경은 한국 교회의 순교자 영성에 큰 관심을 표하면서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며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과 사랑을 본받길 당부하기도.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교황과의 교구별 알현이 이뤄진 11월 29일~12월 1일 사흘간 주교단 사이에선 화제가 만발했다. 사도좌 방문 직전 부산교구장으로 임명된 황철수 주교는 교황을 알현하고 나와 “50주년을 맞은 교구에 대한 축복을 청해 교황님으로부터 직접 강복을 받았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2월 1일 오전 10시 사도 바오로의 무덤이 있는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주교단의 두 번째 공식미사는 거룩한 순교의 얼을 되새긴 장. 로마에 체류 중인 사제 60여명과 함께 이날 미사를 집전한 주교회의 부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강론에서 “사도 바오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 분의 현존이 강력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분을 선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며 “위대한 말씀의 선포자인 바오로 사도의 무덤 곁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사도가 되게 해달라고 바오로 사도의 전구를 청하자”고 말했다.
◎…주교단은 12월 2일 오전 로마 한인신학원 성당에서 이탈리아 한인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신자들을 격려했다. 전체를 통틀어 50세대 남짓한 한인공동체 신자들은 며칠 전부터 온갖 정성을 들여 음식과 선물을 장만하는 등 따뜻하게 주교단을 맞았다. 한인본당 사목회 박수현(그레고리오·48) 회장은 “주교님들의 방문은 로마 한인본당 신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며 “주교단의 앗 리미나를 ‘작은 희년’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국무원 방문을 시작으로 성직자성, 사회복지평의회 등 주교단 가운데 가장 많은 5개 교황청 기구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인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는 “교황님을 비롯해 교황청 대부분의 기구들이 깊은 관심과 기대 섞인 눈으로 한국 교회를 지켜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개별 교회가 지닌 보화를 교황청에 정확히 알려 보편 교회 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데 앗 리미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 사도좌 정기방문에 이어 6년 만에 열린 이번 사도좌 방문 행사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 대구대교구장 최영수 대주교 등 한국 교회 현직 주교 23명 전원과 은퇴주교인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와 전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 등 총 25명의 주교가 함께했다.
한국교회 높아진 위상·역할 확인
■ 한국 주교단 비공식 일정
앗 리미나에 참가한 주교들은 다양한 사목 영역에 관심을 보이며 보편 교회 가운데 한 지체인 한국 교회의 위상과 몫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마리아폴리 센터 방문
◎…사도좌 방문 셋째날인 11월 28일 주교들은 교황의 여름별장이 있는 이탈리아 북부 카스텔간돌포에 위치한 마리아의 사업회(포콜라레 운동) 심장부인 마리아폴리 센터를 방문,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는 마리아의 사업회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포콜라레가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교회 전체를 봐서도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규만 주교 청년행사 참석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장 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는 11월 30일 오후 교황청 인근에 위치한 성 로렌조 국제청년센터에서 열린 청년 행사에 참가해 여러 나라에서 온 신자청년들을 격려하기도. 조주교는 청년들과 함께 봉헌한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불림을 받은 사도들은 청년들이었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면서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청년 신자로서의 소명을 되새길 것을 요청했다.
교황청 기관지 큰 관심 보여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지를 비롯해 바티칸 라디오 등 현지 언론에서도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바티칸 라디오는 한국 교회를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신자를 보유한 지역교회로 소개하고 한국 교회가 직면한 도전들도 상세히 보도했다. 이탈리아 국영 TV인 라이(Rai)는 12월 2일 오전 교황의 안젤루스(삼종기도) 직후 강우일 주교와 가진 생방송 인터뷰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해 한국 교회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었다.
성 바오로 대성당서 미사
◎…주교단은 12월 1일 오전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미사에 이어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에서 마련한 오찬에 참석, 이탈리아 주재 한국 외교관들을 격려하기도. 이 자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많은 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교황님 알현을 비롯한 사도좌 정기방문을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드린다”면서 드러나지 않은 도움을 준 이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교부학 연구회 모임가져
◎…주교단은 사도좌 방문 기간 중 교구 소속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등을 만나 격려하는 등 보이지 않는 바쁜 일정을 소화해냈다. 교부학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이형우 아빠스는 11월 28일 저녁 로마에서 유학 중인 교부학 관련 전공 사제와 수도자들을 초대, 교부학 관련 국내외 동향을 소개하기도.
사진설명
▶강우일 주교를 비롯한 주교단과 이탈리아 유학 사제들이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주교회의 의장 장익 주교를 비롯한 한국주교단이 11월 26일 성 베드로 사도 무덤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박정일 주교가 시성성 장관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스 추기경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시복절차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하고 있다.
▶대구대교구장 최영수 대주교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하고 있다.
▶주교들이 성녀 마르타의 집 앞에서 기념촬영 했다.
▶로마 한인성당에서 미사 봉헌 후 정진석 추기경과 안명옥 주교, 최영수 대주교(왼쪽부터)가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김지영 주 바티칸 한국대사가 한국 주교단과의 오찬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장 조규만 주교가 11월 30일 청년미사 후 환영행사에서 청년들과 대화하고 있다.
▶11월 28일 이형우 아빠스를 비롯한 교부학 관련 전공 사제들이 모임을 갖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도좌 정기방문 셋째 날인 11월 28일 카스텔간돌포의 마리아폴리센터를 방문한 한국 주교단이 아바학교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11월 25일 새로 서임된 추기경을 만나 축하 인사를 전하고 있다.
▶한국 주교단이 12월 1일 김희중 주교의 안내로 성 베드로대성당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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