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희(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고정관념을 넘어
밀라노의 프란치스코 그란데 소성당 설치 위해 제작
미술사 뛰어난 업적인 ‘스푸마토 기법’ 개발해 적용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omo senza lettera).”
다빈치가 자신을 가리켜 한 말이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엘리트들이 고전, 즉 책을 통해 지식을 얻었던 것에 반하여 자신은 자연 현상을 직접 관찰하고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에 도전했던 다빈치의 철학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빈치라는 마을에 가면 두 곳의 박물관이 있다. 하나는 시립 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인데 두 곳 모두에서 다빈치가 생전에 남겼던 많은 아이디어 스케치들을 현대의 전문가들이 실제로 만들어서 전시시킨 기계와 발명품들을 볼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부터 자전거, 스쿠버다이빙 도구, 동전 찍어내는 기계, 심지어는 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방대하다. 이들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빈치는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디어들을 생산해 냈고, 그것들을 스케치하고 메모했으나 정작 자신은 그것들을 일일이 만들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나오자마자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샘물 솟듯 솟아났을 테니 말이다.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이 말해주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수백년 된 올리브 나무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마을 빈치에서 태어났다.
레오나르도는 화가로 입문했으나 그림에만 전념하기에는 그의 호기심과 지식의 폭이 너무도 넓었기에 그가 완성한 그림은 정작 스무 점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 미술에만 전념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더불어 그는 르네상스 3대 천재 미술가에 꼽힌다.
17세 되던 해에 레오나르도는 부친의 손에 이끌려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잘 나가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 미술에 필요한 해부학, 원근법, 데생법 등을 배웠다.
이때부터 그는 약 10년 간 유능한 화가로 활동을 하다가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의 공작 루도비코 일 모로의 궁정에 들어가 이 통치자 밑에서 17년간 봉직했다.
기록에 의하면 다빈치는 사교적이지 못했고, 늘 혼자서 사색하던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피렌체에서 벌어진 예술가들 간의 열띤 경쟁에 회의를 느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한적한 밀라노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밀라노에서 제작한 첫 작품인 ‘동굴 속의 성모’는 중앙에 성모님이 계시고 화면 앞 쪽에 아기 예수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세례자 요한에게 축성을 내리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천사는 유일하게 화면 밖 관객을 향하고 있는데 검지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마치 관객을 그림 안으로 초대하려는 듯이 보인다. 각 인물들은 피라미드라는 안정된 구도 안에서 서로 간에 의미 있는 손동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밀라노의 프란치스코 그란데라는 소성당에 설치하기 위해 무염시태 형제회에서 1483년에 주문하였다. 밀라노에서 활동을 개시한 지 1년 만에 주문받은 대작이다.
작품의 소재는 그리스도가 헤로데 왕이 두 살 미만의 영아를 모두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던 중 세례자 요한을 만났다는 전설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에서 보이는 암석들은 시나이 산의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된다.
무대가 동굴 속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천사의 머리카락은 유사한 색의 담쟁이와 맞닿아 있어서 경계가 모호하며, 성모님의 푸른 옷도 어둠 때문에 형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발가벗은 아기 예수의 몸은 섬세하고 미묘한 빛과 어둠의 대비로 그려졌으며, 세례자 요한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사람들을 보면 잘 알아 볼 수가 없듯이 이들 인물들도 희미한 대기 속에 묻혀 있어서 그 누구도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는 희미한 빛은 동굴 밖에서 비춰진 유일한 빛 덕분이다.
“어둠 속에서는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그리고 싶지 않다면 또렷한 윤곽선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빈치의 메모에 적혀 있는 말이다. 이처럼 윤곽선을 뚜렷이 그리지 않고 모호하게 그리는 방식을 스푸마토(sfumato)라고 부른다. 이 기법으로 다빈치 이후의 화가들은 이전의 딱딱하고 인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체를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대표작이 바로 ‘모나리자’이다. 그러나 모나리자가 탄생하기 이전 다빈치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것처럼 스푸마토 기법을 실험하고 연구했다.
그러고 보면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에 속하는 스푸마토 기법의 개발은 책에 적혀 있는 지식, 혹은 선배들이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평생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탐구한 것을 기록하고 그리고자 했던 작가의 신념과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다빈치가 진정 위대한 화가인 까닭은 기법을 떠나 그의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을 경험하게 하는데 있다. 이 작품 역시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진다.
고종희(마리아, 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해설 Tip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굴 속의 성모’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외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도 소장돼 있다. 내셔널갤러리의 작품은 1503~1506년, 다빈치와 암브로조 디프레스가 공동 제작한 것으로 다빈치 작품의 복사품으로 알려져있다.
중세시대 회화작품을 살펴보면 유독 제단화(Altarpiece)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동굴 속의 성모’ 또한 수도회 성당 제단화로 주문된 작품이었다. 12세기 무렵부터 보편화된 제단화는 르네상스 시기 들어 건축의 일부로까지 자리잡았다.
제단화는 보통 성당 제대 뒤편 벽화로 그리거나 병풍처럼 몇폭으로 나눠 장식 칸막이 형태로 그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림을 두세폭 연결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전례가 없는 평소에는 접어두거나 덮개를 해두기도 했다.
제단화는 대개 그리스도의 일생에서부터 사도들, 수호성인, 교회박사들, 성경 내용 등을 소재로 한다. 이러한 제단화는 제대를 성스럽게 장식하는 것은 물론, 특히 글을 알지못하는 일반 서민들에게 성경내용과 교회 가르침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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