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아들과 ‘쎄쎄쎄’를 하다 멈칫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동요에 맞춰 놀다 ‘은하수’란 단어에서 말이다.
‘은하수를 본 적이 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본 적이 없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결정했다. 우리 가족 모두 밤하늘의 별무리인 은하수를 보러 가기로. 장소는 단박에 결정됐다.
이튿날 주말 미리내성지(전담 강정근 신부)에 도착했다. 다들 알다시피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 우리말이다.
도착하자마자 대뜸 아내가 묻는다. “대낮에 은하수가 보여?” 모르시는 말씀. 이곳에는 과거 핍박 속에서 순교로서 신앙을 지킨 최초의 본토인사제 김대건 신부 유해가 안장돼있다. “그 분처럼 빛나는 분이 어딨어?” 나의 반문에 아내가 입을 닫았다.
김대건 신부뿐만이 아니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인 고(高) 우르술라, 이윤일 요한, 이름 없이 신앙을 증거한 16위 무명 순교자의 묘역 등이 빛을 발하고 있다.
미리내 교우촌은 신유박해(1801년) 이후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산속을 찾아들어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훗날 미리내는 공소와 본당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나눔과 섬김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미리내 교우촌은 주로 충청도에서 피난해 온 신자들로 형성됐다.
훗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옮겨온 이민식(빈첸시오, 1829~1921)의 집안도 조부 때에 이미 이곳 미리내로 이주해 정착했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 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 순교했다. 당시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가는 것이 관례. 그러나 김대건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파수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교우촌 어른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은 17세의 이민식 빈첸시오는 파수 경비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가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 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어내는 데 성공,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미리내에 도착해 시신을 무사히 안장시켰다.
1906년 ‘미리내 요셉성당’ 축복 때에는 교우 수가 1600명을 넘었으며, 1922년에는 본당관할 12개 공소의 신자가 1453명에 이를 정도로 신앙촌 그 자체였다.
1991년 성지 중앙에 봉헌된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으로 들어갔다. 제대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유해 ‘종아리뼈’가 안치되어 있다. 2층 전시실에는 박해시대 천주교인에게 사용된 고문형구와 순교 참상의 모형물들이 있었다. 가족 모두 말이 없었다. 눈을 감았다. 아수라장…고통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1846년 김대건 신부는 스승과 동료 신부에게 옥중 서한을 보냈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형벌을 끝까지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 주님! 누가 감히(이를) 감당할 수 있으리이까?…’
신앙생활을 되돌아 봤다. 부끄러웠다. 그들의 빛 속에서 평안함만을 추구하고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삶을 살아온 모습.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손에 묵주가 쥐어져 있었다.
매서운 추위였지만 가족 모두 입구까지 걸으며 조용히 묵상했다. 돌아가는 차 안. 따뜻했다. 아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내 아내가 말을 걸었다. “여보. 성지순례 오랜만에 하니 참 좋다.”
■ 순례 및 후원 문의 031-674-1256
■ 미사 주일 오전 11시, 오후 2시. 평일 월~토 오전 11시30분. 성모 신심, 후원회원, 성지봉사자, 성체조배실, 기금봉헌자를 위한 미사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