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덕행'은 가톨릭 영성의 핵심
‘삶의 실천’으로 주님과 일치 이루는 기도 지향
프로이드 이후 ‘인간 정신’도 과학대상에 포함
지난 주 가톨릭 영성의 대략적인 역사를 살펴 보았다. 이 영성의 역사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무엇일까. 바로 ‘기도생활’과 ‘덕행생활’이다. 초기교회 당시 사막에 가서 생활한 이들에서부터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큰 맥이 바로 이 2가지 생활이다.
기도 생활을 이야기 할 때 9세기의 ‘귀노’라는 분을 빼놓을 수 없다. 귀노는 우리에게 ‘렉시오 디비나’를 가르쳐 주신 분이다. 렉시오(LECTIO)는 ‘독서’라는 뜻이고 디비나(DIVINA)는 ‘거룩한’‘신성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렉시오 디비나란 거룩한 독서, 즉 성독(聖讀)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귀노는 기도를 4단계로 분류한다.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3단계 기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마음으로 음미하는 기도를 말한다. 또 4단계 관상은 (모두들 관상을 어렵게 말하지만) 한마디로 ‘하느님과의 일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다. 그리스도는 기도하시는 분, 기도를 실천하는 분이셨다. 그리스도의 기도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기도는 결국 정적인 것이 아니다. 기도는 실천으로 연결될 때, 완성되는 것이다. 혼자서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는 기도는 50%다. 기도는 삶과 하나가 될 때 나머지 50%가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영성의 진정한 핵심은 기도생활과 신망애(信望愛, 믿음 희망 사랑) 3덕과 윤리덕의 실천이 하나로 묶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 영성생활의 골자다. 물론 전통적 영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극히 단순화 시키면 이렇다는 말이다.
그럼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 하려는 현대 영성은 무엇일까. 현대 영성은 지금까지 설명한 전통적 영성의 기반위에 서 있다. 전통적 영성에서는 우리에게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라’‘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덕행을 잘 닦아야 한다’ ‘신덕 망덕 애덕을 잘 닦아야 한다’ ‘청빈, 정결, 순명의 덕을 쌓아라’ ‘의로움을 추구하고 겸손하라’ 등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작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피부로 와 닿는 ‘인간학적’ 설명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과 자녀교육 등으로 동분서주 바쁜 주부들에게 전통적 영성이 어렵게 와 닿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적 영성에 뿌리를 둔 현대 영성은 이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100여 년 전에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드(Sigismund Schlomo Freud, 1856~1939)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그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산다니. 우리 모두 의식(생각)하고 살지, 무의식적(생각없이)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앉아 있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말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의식을 갖고 살아라’라고 하지 ‘무의식을 고쳐라’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프로이드는 이러한 현재의 의식이 인간전체로 볼 때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이 말도 일리가 있다. 식사전후에 성호경을 긋는 것도 때때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대부분 의식적으로 걷지 않는다. 숨쉬는 것, 밥먹는 것,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등에서도 의지적 노력은 미미해 보인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 심리상태 등 모든 것의 깊은 이면에는 무의식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드에 대해선, 특히 성(性)에 대한 논지는 이후 많은 비판을 받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프로이드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프로이드 이후 인간 정신이 과학적으로 분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과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자연과학’을 뜻했다. 자연과학은 쪼개고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합리적 이성과 인간 경험이 총동원된다. 인간 앞에 놓여있는 모든 것이 과학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프로이드 이후 과학의 대상은 확대된다. 인간 정신이 그 분석의 대상(과학의 대상)에 놓이게 된다. 프로이드 이후 가톨릭 영성도 이제 과학의 실험대 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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