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예비자 교리반에 나오셨다는 것은 그분을 잘 아는 본당 신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미신장이였기 때문이다. 그 댁에서는 툭하면 굿판이나 푸닥거리가 벌어졌고, 혹시라도 누가 교회 이야기만 꺼내도 소금을 뿌려댔다. 그런 할머니가 교리반에 나오시다니….
연세는 여든을 넘기셨고, 눈과 귀는 어둡고, 글은 애당초 모르시고, 교리반에 나와 앉아계신 것 자체가 그분께는 큰 고욕이었다. 교리 시간이 끝날 때면 미안해하시며 말씀하셨다. “신부님, 나는 신부님이 무슨 소리했는지 하나도 몰라. 어쩌지?” 걱정하지 마시라는 내 말에 위로를 받고 가시지만 상황은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교리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다. 빠지시기는 커녕 저녁 8시에 시작하는 교리반에 오후 5시면 나오셨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냐고 여쭈면 걸음 거리가 신통치 않으셔서 늦을까봐 일찍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하시며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몇 시간씩 홀로 앉아 계셨다.
드디어 세례를 받게 됐다. 물론 할머니는 간단한 기도문조차 모르셨지만 앞으로 주일날은 절대로 미사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세례를 드리기로 했다. 세례명은 ‘안나’로 정했다.
“할머니, 입 안에 이가 있어요? 없어요?” “늙어서 다 빠지고 없어.” “그럼 할머니, 그 이가 또 나요? 안나요?” “무슨 이가 또 나. 안나지” “그러니까 할머니는 오늘부터 안나예요. 이안나.”
그래서 성이 이씨인 할머니는 이안나가 되시어 행복하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 후 할머니 집을 방문했더니 세례 때에 가슴에 달았던 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셨다. ‘이안나’라는 새로운 이름이 쓰인 자랑스러운 이름표와 함께…. 세례를 받으신 이안나 할머니는 약속대로 주일이면 언제나 성당 맨 앞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셨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주일 날, 미사 중 할머니는 유난히 힘들어 하셨다. 미사 후에 여쭤 보니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얼른 집에 가시어 쉬시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하시며 집으로 가셨다.
그날 저녁,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이안나 할머니의 아들이었고 할머니가 오후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방금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갑작스런 부고에 당황하며 연령회장에게 기별하여 강당을 정리하도록 했다. 그런데 한참 후 도착한 차는 장의차가 아니라 구급차였다.
의사는 계속해서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셨다.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아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했었던 것이다. 즉시 할머니에게 병자성사를 집전했고 할머니의 자녀들과 본당 신자들과 임종경을 바쳤다. 임종 절차를 모두 마친 할머니는 내가 안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하느님 나라로 가셨다.
이안나 할머니의 신앙생활은 단지 몇 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몇 달이 당신의 일생을 갚고도 남을 만큼 깊었었나 보다. 누구도 누리지 못할 선종의 은혜를 누리고 가신 이안나 할머니….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받으신 복된 영혼이셨다.
신호철 신부 (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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