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자신이 유다가 아닌가”
십자가 예수님 앞에 선 유다에 관한 재해석
대립적 구도 아닌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관심
나는 모태 신앙이 아니다. 지금은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에는 누군가가 기도하는 것을 본 적도 없었고 하느님에 관해 말해 준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 개의 주택들 중에 ‘왜 이 집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되는지’,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집의 딸인지, 누가 그것을 결정했는지’ 등, 내 의지로 거부할 수 없는 이런 관계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든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종교에 관심이 많아졌고, 대학시절 기숙사 근처를 산책하다 우연히 발걸음이 멈춘 성당에서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미사와 교리 공부는 나의 의문에 답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으로 20대를 보내면서 하느님이 과연 존재하는지, 진정 그 분이 전지전능한 절대자인지 의심스러웠다. 여기에 대한 답은 파리 유학시절 자주 미사를 드렸던 동네 근처 성당의 신부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기도 중에 감정이 격해져 울고 있었고,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던 한 신부님이 성당 문을 나서는 나를 붙들었다. “하느님은 당신께 어떤 것도 줄 수 없습니다. 떠나간 애인도 돌아오게 하지 못하고, 당신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마음의 평화는 주실 수 있을 겁니다.”
하느님은 나를 위로하고 평화를 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신부님의 말씀은 자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생은 이미 주어진 것이니 그것에 대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난 그 이후 모든 의문을 덮었다. 심지어 처음 성서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웠던 ‘유다’의 존재에 대한 의문조차 지웠다. 유다는 하느님이 얼마나 무력한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 확인시켜 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절망에 목을 매 자살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유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전통적인 종교화에서 유다를 비굴하고 사악한 인간으로 혹은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는 비참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달리는 ‘십자가 책형’에서 죄인이 아니라 제자로서 예수와 당당히 독대하고 있는 모습으로 유다를 재해석하고 있다.
‘십자가 책형’을 주제로 한 회화에서 유다가 등장하는 경우는 달리의 작품이 유일한 것이라 믿어진다. 성경에 의하면 유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발밑에 있지 않았고,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 사도 요한 등이 있었다. 그러나 달리의 ‘십자가 책형’에는 적막하고 공허한 공간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고 ‘유다’ 두 사람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는 두 사람의 깊은 인연(악연?)도 우주의 움직임도 멈추게 할 것 같은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이곳은 예수와 유다만이 존재하는 운명적인 공간이다. 십자가 책형 사건의 주인공은 예수와 유다다. 배반한 유다와 그 배반으로 죽은 예수, 이것이 성서의 맥락이다.
유다가 없었더라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는 유다와 예수의 미묘한 갈등이나 대립을 묘사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이 그림에서 예수와 독대하고 있는 자가 과연 유다인지 혹시 베드로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유다는 스승을 경의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가 유다임을 가리키는 열쇠는 노란 사도복이다. 전통적으로 노란색은 배반을 상징하는 색채이다. 배반은 유다와 동의어이다. 달리는 ‘십자가 책형’ 뿐만 아니라 ‘최후의 만찬’에서도 유다에게 노란 사도복을 입히고 있다. ‘노란 사도복’은 유다에게 씌워진 ‘운명적 굴레’처럼 느껴진다.
베드로와 유다, 둘 다 예수를 배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유다의 죄가 더 크긴 하지만. 그러나 베드로는 후회했고 깊이 참회했으며, 박해와 맞서 싸우며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순교로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쳤다.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도 베드로만큼 후회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와 달리 절망했고, 결국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결함으로써 영원히 버림받는 존재가 되었다.
겉으로는 사회 정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좇으며 타인을 속이고 짓밟는 유다 같은 사람은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다. 유다는 죄책감으로 후회하고 절망하며 자살이라도 했지만 우리는 한 줌의 죄책감도 없이 부, 권력, 명예만을 추구하며 심지어 그것을 자랑하기도 한다.
유다를 성서 속의 저주받은 인물로만 치부하지만 우리 모두가, 어쩌면 나 자신이 유다일지도 모른다. 달리의 ‘노란 사도복’을 입은 유다가 그리스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우리 모두가 배반자입니다.”
김현화(베로니카) 숙대 미술사학과 교수
Tip
괴짜 예술가, 오만한 천재, 괴팍한 광인. 바로 살바도르 달리에게 붙여지곤 하던 수식어였다. 하지만 이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색과 그림을 이야기 하지 않고는 20세기 미술을 언급할 수 없다는 평가 또한 받는 인물이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녹아내리는 시계, 입술모양의 소파 등의 독특한 형태의 작품은 잘 남아있을 것이다. 그는 평생 ‘괴짜’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가구, 패션, 영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달리를 두고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끊임없이 달리는 모터’라고 할 정도였다.
아울러 달리는 1974년에는 달리 연극-미술관을 헌정하며, 대중을 ‘달리의 세계’로 이끄는 발판도 열어두었다.
1920~30년대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부르주아적 전통에 따라 신앙을 거부하는 세태에 어우러져, 달리 또한 가톨릭신앙을 거부하고 온갖 종류의 신앙을 접한 바 있다. 그는 한때 예술만이 무의식에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내면과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몰두해왔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전해받은 가톨릭신앙을 떨쳐내지 못하고 일생 동안 교회와 얽힌 파란만장한 관계를 펼쳐보인다.
특히 1940년대 들어 초현실주의운동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한 이후 종교에 대한 깊은 탐구와 작품제작에 들어갔다. 우주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하나의 원자로 그려내는 꿈의 형상 등이 대표적인 형태다.
지난 2004년에는 달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도 그의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특별 전시회가 열렸었다. 당시 특별전에서는 달리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헌정한 조각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과 엄지손가락으로 묘사된 하느님, 생명력을 상징하는 남자의 형상, 묵상하는 영혼을 함께 담은 작품 ‘천사의 환영’ 등도 만날 수 있는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기획전이었다.
그림설명 : 살바도르 달리, '십자가 책형', 1954, 캔버스에 유채, 194.5×124cm, 뉴욕, 메트로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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