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이 무서웠다. 무섭다기 보다는 두려웠다고 해야 할까? 본당에 있을 때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보려 해도 미사시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한 표정들을 접하면 사목자로서 ‘뭘 해야 하나’, ‘뭘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난감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내가 청소년수련원에서 두 해를 지내고 나니 그 두려움은 아이들에게 다가서지 못한 나 자신의 문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수련원은 여름에는 중고등부 학생들을, 겨울에는 초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학교를 갖는다. 수련원에 부임하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네 안에 교회 있다’는 주제의 신앙학교가 열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교회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소속감을 키우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교회에 전례 있어’, ‘교회에 친교 있어’, ‘교회에 봉사 있어’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중에서 ‘교회에 증거 있어’라는 순교 체험 프로그램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우리 순교자들이 겪으셨을 고통을 체험하면서 스스로의 신앙을 심화하고 증거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신앙에 무관심한 듯 보이던 그들이 놀라운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아이들을 모두 십자가에 밧줄로 묶어서 매달았다. 발받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팔뚝에 가해지는 통증이 보통이 아니어서 매달린 채 우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배교하라는 말에는 고개를 흔들며 ‘안해요!’라고 소리지르고, 우는 소리 나면 배교한 것으로 알겠다는 말에 소리 없이 훌쩍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린 동생들 차례가 되자 동생들 대신에 매달릴 사람 있느냐는 말에 이미 매달렸었지만 선뜻 앞으로 나오는 고학년 아이들을 보면서 ‘니들이 나보다 낫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1월의 매서운 북서풍 속에서 예수님 상본을 밟고 지나가 모닥불을 쬐던지, 아니면 맨발로 꽁꽁 얼은 연못을 가로 질러가라는 말에 줄줄이 얼음 위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볼 때, 얼음 위에서 동생들보고 자기 발등에 올라서라고 하면서 성모송을 목이 터져라 외우는 아이들을 볼 때는 자랑스러움을 넘어서 소름끼치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결국 발바닥에 동상이 걸린 아이들도 있었고 부모님들께 사과의 편지를 써야 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매우 혹독한 과정을 겪었지만 그들이 그 과정을 통해 느낀 신앙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그것을 못 참고 배교한 아이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이들이 무섭지 않다. 그들은 다만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을 따름이다. 어떤 사진가가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조금 더 다가서주고 조금 더 기다려주고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인가?
이재학 신부 (인천 바다의 별 청소년수련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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