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정성 기도 봉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신앙 앞에서 불가능은 없었다. 문인화가 정태순(아녜스, 65, 분당성마태오본당)씨가 신구약 성경 전권을 붓글씨로 필사, 최근 교구에 기증했다.
정씨의 필사 성경은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미술 문화원 서예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등에 잇달아 입선한 중견 화가의 땀이 배인 집념의 결실인데다, 그 희귀성까지 고려할 경우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새벽 4시면 일어나 기도를 하고,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가족 나들이를 갈 때도 늘 성경과 붓을 함께 가지고 갔다. 취미 생활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텔레비전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 필사에 매달렸습니다. 적게는 2~3시간, 기본적으로 5~6시간은 늘 책상 앞에서 붙어 살았지요. 하루 종일 필사에 매달린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신구약 전권을 묶어, 표고를 하고 나니 총 44권이 만들어졌다. 한 권에 사용된 종이는 대략 150장 내외. 총 7000장을 쓴 것이다. 글씨가 엇나가 쓰다 버린 종이까지 계산하면 종이만 1만장 이상 사용했다. 쓰다 버린 붓도 수백자루가 넘는다. 평균 50장 정도 쓸 때 마다 붓을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3~4시간 꼼짝 않고 필사를 하다 보면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전무용을 배우기까지 했다.
무엇이 정씨를 이토록 성경 필사에 매달리게 했을까. “인간이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봉헌은 바로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봉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정성과 기도를 바쳐 성경 필사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정작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은총으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쓴게 아닙니다.”
정씨는 “신앙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더 열심히 살아, 가족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 시인 이상화의 며느리다. 어머니의 세례 대모가 장면 총리의 부인이었고, 남편의 6촌 누님은 육당 최남선의 며느리였다.
남편 이충희(도미니코, 74)씨는 “성경 필사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체험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성경 필사 노력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대만교회에서 발행한 한자 성경을 붓글씨로 필사할 계획이다. 붓이 아닌 펜글씨 성경 필사도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 쉴 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쓰면 쓸수록 은총을 느끼는데, 어떻게 안 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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