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에도 세상에 빛 전하는 작은 천사들
거리 곳곳에서는 성탄을 알리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주~신데”
한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남쪽 바다도시 진해. 추위가 엄습하고 수은주가 0을 지나쳐 아래로 향한 12월 어느 날.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겨우 주택가 한켠 샘바위 공부방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을 발견했다.
“얘들아 안녕! 누구를 기다리니? 산타 할아버지?”
진해시 이동 62-234번지 샘바위 공부방. 여느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지만, 공부방 아이들에게는 산타가 오지 않는다. 산타가 없다.
여기는 우리들 아지트 샘바위 공부방입니다
11시. 공부방에 출근한 세 명의 교사는 학생들의 간식을 준비하고 교재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순수 자연 식품으로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기위해 장을 보고 손수 음식을 만드는 교사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13시30분. 하나 둘씩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 시간에 오는 아이들은 초등학생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다 하나같이 소리를 지르며 해맑은 얼굴로 슬라이딩 하듯 날아 들어온다.
14시. 공부방에 도착한 아이들은 선생들이 마련한 음식을 먹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얘기한다. 때로는 먹다가 옷에 흘리기도 하고 친구의 얼굴에 묻히기도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서로 챙기는 모습에서 대견함도 보인다.
14시30분.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는데도 간식을 먹은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동화책과 역사책, 위인전 등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다가 키득키득 웃는 아이, 조용히 집중해서 읽는 아이.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는 이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15시. 자원 봉사자들이 오면 수업이 시작된다. 영어, 독서, 환경, 서예, 비즈공예, 천연 염색하기 등 부족한 학교 공부 보충과 더불어 쉽게 체험 할 수 없는 재미있는 수업에 아이들의 눈망울은 초롱초롱하다.
18시. 초등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면 학교를 마치고 온 중학생들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봉사자들과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에 공부방의 저녁식사는 늘 도떼기시장이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초등부 학생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중등부 학생들은 9시까지 수업을 하고 귀가한다.
샘바위 공부방. 1989년 진해시 태평동 버려진 꼬막공장에서 시작한 공부방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도시의 주변부 궁핍한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부방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편부모, 조부모, 친인척, 부모장애, 저소득 및 실직자 가정의 아동이다.
제가 바로 산타에요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이들이 한명씩 손을 든다.
“왜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기도도 하고 편지도 썼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셨어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살아온 공부방 아이들은 대부분 성탄절이라고 해서 특별한 선물을 받거나 여느 평범한 가정에서 하듯 크리스마스 날 머리맡에 선물이 놓여있지는 않다.
공부방의 선생들 역시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연민이나 애타심으로 선물을 안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주의에 많이 물들어 있어요. 오히려 돈을 들여 마트나 문구점에서 아이들의 선물을 사주는 일은 쉬워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우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공부방 책임자 홍진옥(카타리나) 선생은 아이들에게 손수 목도리를 만들어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도록 가르친다.
그렇다. 샘바위 공부방에서는 비록 산타 옷을 입고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든 산타 할아버지는 없지만 아이들은 물건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열심히 삐뚤빼뚤 손수 만든 목도리를 자기 자신에게 선물한다.
성탄이 다가오면 학생들은 기쁜 마음으로 연극을 준비하고, 시 노래 춤 솜씨를 뽐낸다. 그리고 봉사자 선생들과 아이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축제를 벌인다.
“아기 예수님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실거에요. 저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런 소원 말고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집에 가기 싫어요!
저녁을 먹고 나면 초등부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귀가한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싫어 울상이 된다.
조금 더 있다가 가게 해 달라며 떼쓰는 아이, 슬픈 표정으로 공부방을 뒤로 한 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아이. 교사들은 매일 마다 아이들을 달래고 토닥인다.
할어버지 할머니와 사는 다솜이(가명).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마저 가출해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다솜이는 집에 가는 것이 너무나 싫다. 할아버지가 술을 먹은 날이면 어김없이 다솜이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랑에 굶주리고 목말라 있다. 그래서 봉사자들에게 늘 매달리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들의 입장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단단하게 자라고 밝고 씩씩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자 찾아온 봉사자는 현재 7명. 하지만 25명의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작은 상처들까지 어루만져주기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샘바위 공부방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만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햇빛, 바람, 별빛, 하느님 사랑을 받고 자란 음식을 먹어야 아이들이 건강해지고 튼튼해진다고 선생들이 입을 모은다.
“대량 생산과 이익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 보다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자라야 아이들도 그 사랑을 체득한다고 생각해요”
올해 샘바위 공부방에서는 165.5㎡ 남짓한 텃밭을 빌려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지난 12월 5일에는 아이들이 모두 참여해 텃밭에서 그동안 길러왔던 무를 뽑아 김장도 했다.
샘바위 공부방은 도시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부뿐만 아니라 진정한 놀이, 진정한 쉼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립심이 없고 선택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아이들. 오늘도 공부방의 선생들과 봉사자들은 이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봉헌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만의 소질과 특징을 잘 발휘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부디 밝은 모습으로 희망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샘바위 공부방에 첫 발을 디디며 여기에는 산타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이곳 샘바위 공부방에는 어려운 환경에도 꿋꿋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아가며 예쁘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교사들과 아이들이 있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데”
※ 샘바위 공부방 후원금 계좌 - 경남은행 518-22-0185452 홍진옥, 문의 055-545-0689
사진설명
▲"나는야 산타!" 샘바위 공부방 아이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기쁜 표정을 하고 있다. 내가 바로 산타라며 들뜬 모습으로 성탄을 기다리는 아이들.
▲은인들을 위해 아이들이 손수 만든 카드.
▲공부방 아이들이 은인들을 위한 성탄 선물로 환경 수세미를 직접 짜 만들고 있다.
▲교사·아이들의 기념촬영 모습.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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