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천진암이 이벽과 정약전 등이 강학을 하던 장소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다산은 1822년 녹암 권철신 묘지명에 이렇게 썼다. “선형 정약전이 공을 스승으로 섬겨 지난 기해년(1779) 겨울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할 적에 이벽이 눈 오는 밤에 찾아오자, 촛불을 밝혀놓고 경을 담론하였는데, 그 7년 뒤에 비방이 생겼으니, 성대한 자리는 두 번 다시 열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다산은 또 1797년에는 천진암에 와서 ‘단오날에 둘째 형님(정약전)과 천진암에 와보니, 이벽의 독서처가 아직도 그저 있구나’라고 적었다.
또한 1827년에 65세로 천진암을 다시 찾은 다산은 “천진암에 오르는 바윗돌 사이로 난 이 오솔길은, 내가 어린 아이 적에 오르내리며 놀던 길인데, 이제 지금 천진암에 다시 와보는 이 나그네의 마음은 서글퍼지네….”라고 노래했다.
따라서 강학은 천진암에서 있었음이 확실하다. 물론 주어사에서도 강학이 있었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약용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곳은 천진암이었던 것이다.
그럼 천진암 강학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 다산이 쓴 ‘정약전 묘지명’에 따르면 우선 유학적인 공부,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로부터 시작하여 신앙의 공부와 실천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다산이 천주교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이렇게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방에서 적대자들이 그를 천주교 신자로 옭아 넣을 빌미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달레의 교회사에 따르면 이 강학의 성격을 신앙적인 모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유(1777)년에 유명한 학자 권철신은 정약전과, 학식을 얻기를 원하는 그 밖의 학자들과 함께,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은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외딴 절로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이벽은 크게 기뻐하며 자기도 그들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 연구회는 10여 일 걸렸다. 그 동안 하늘, 세상, 인성 등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탐구하였다. … 그들이 읽은 것만으로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들의 정신을 비추기에 넉넉하였다. 즉시로 그들은 새 종교의 대하여 아는 것은 전부 실천하기 시작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7일 중 하루는 하느님 공경에 온전히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읽은 후로는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에는 다른 일은 모두 쉬고 묵상에 전심하였으며, 또 그 날에는 육식을 피하였다. 이 모든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극히 비밀리에 실천하였다. … 이벽은 기회 있을 때마다 천주교 교리를 깊이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 강학의 성격이 유학과 서양의 과학 탐구에 그치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엎드려 기도하고, 주일을 지키는 등 아는 것은 전부 실천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앙 활동이 이미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 때 교황청에서는 기적심사를 관면하였다. 후손들의 활기찬 신앙생활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기적의 표가 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지금도 다산 정약용 요한의 후손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그 후손 중에는 여러 명의 성직자들도 있다. 모두가 정씨 가문과 다산 정요한의 신앙의 결실인 셈이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하여 진다고 한다. 정약용이 죽음에 앞서 후손들에게 무엇을 유언하였겠는가? 그토록 가문의 몰락 때문에 천주교를 반대하던 큰 아들 정학연이, 할 수 없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용인대리구장 김학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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