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편견으로 진실 왜곡말아야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였다는 논증을 할때 다음의 원칙들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긍정적인 사실을 근거도 없이 부정할 수는 없다. 추리 소설로 자료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공식적인 기록이 개인적인 기록에 우선한다. 개인 자료 보다는 관변서류와 공문이 보다 더 객관적이다. 또한 가까운 자료가 우선한다. 시기적으로 가까운 일기가, 자신을 미화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고 기억이 희미한 회고록보다 우선한다. 더 나아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내의 자료가 국외의 자료에 우선한다.
그러나 교회사에서는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신학자의 자료와 해석이 우선한다. 서양 선교사들의 자료라 하더라도, 한학에 능통한 수재들이 조선에 와서 20여 년씩 천주교와 유교가 조선에서 만나는 과정을 연구하고, 조선 국내에 머물면서 기록한 성직자의 자료는 국내자료로 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 중에는 그만큼 장기간 연구한 사람들이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므로, 양쪽 사정을 깊이 연구한 연구가의 기록이 더 우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교회사학은 신학으로서 사목과 결부되므로, 여러 가지 학설이 난무할 때에는 교권이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정리하고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교황 비오 9세의 ‘실라부스’가 좋은 예다.
이상의 사실로 알 수 있듯이, 그릇된 편견으로 역사적인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정약용 당시에는 사방의 적대자들 때문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드러내놓고 기록할 수 없었다. 이를 감안할 때, 다산 정약용은 글자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글자 속에 자신의 신앙을 감추어 놓았다고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는, 수원 화성(1796년 완공)의 방화수류정 서쪽 벽면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도 다산 정약용의 신앙고백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국인 신부가 입국하여 새롭게 신앙생활이 활기를 띠고 있었으므로, 정약용이 무언의 신앙표시를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건축물에 새겨 넣었을 것이다. 이에 관하여 확실한 반대 자료가 나타나지 않는 한, 화성의 건축물은 모두 다산 정약용의 책임 하에 완성된 작품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호교론적으로 미화해서도 안 되지만, 감성에 의존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성직자들은(특히 천진암이 있는 수원교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바로 알고, 천주교의 뿌리를 확실히 연구하면서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으며, 올바르게 알려야 할 것이다.
용인대리구장 김학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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