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머리에 이고 예수님 알렸지”
1958년 예수고상 보고 “양반교회 믿자”고 결심
마귀 이기려고 묵주 손에 들고 성호 그으며 선교
10년 전 기록된 선교 장부에만 신영세자 373명
“예전에는 공소가 없으니께 우리 집에 쬐깐한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놓고 마을 신자 50명이 궁뎅이를 부딪쳐가면서 기도했어.”
충북 괴산군 불정면 세평리.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도착한 그 산골마을에는 작지만 ‘힘이 센’ 전근(요안나·83·전 청주교구 세평공소 회장) 할머니가 산다. 작달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앙의 힘은 이곳 세평리 마을 주민 모두를 천주교 신자로 만들어버렸다.
10년 전까지 직접 썼던 장부의 숫자만 해도 세례 373명, 첫영성체 95명, 대세 61명, 견진성사 139명, 혼배 69쌍이 적혀있다. 10년 전 ‘실적’이 이정도니 현재까지 인원을 합친다면 그 숫자는 ‘상상초월’이다.
할머니가 천주교를 만난 것은 1958년. 불정면 옹기점에 화로를 사러갔다가 예수고상을 보고 ‘여기가 무슨 교회요?’하고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옹기점 주인이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소실도 얻지 않고, 교적도 있어서 전국 방방곡곡을 가도 똑같이 믿는 교회요’라고 말해주잖아. 아, 그래서 ‘여기야말로 양반교회로구나’하고 무릎을 쳤지.”
할머니는 그날로 옹기점 주인에게 너덜너덜 떨어진 교리문답을 얻어 밤낮으로 읽고 베껴 쓰기를 시작했다. 한글에는 ‘까막눈’이었지만 교리문답 덕분에 한글도 깨우쳐 할머니는 1958년 3월 18일, 요안나라는 이름으로 목도공소에서 세례를 받고 이 마을 제1호 신자가 됐다. 영세 받던 그 해,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어머니가 쓰러지는 등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겪게 됐다.
“‘마귀가 나를 해코지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마귀를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선교를 하기 시작했지.”
선교가 무엇인지도, 기도방법도 몰랐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손에 묵주를 들고, 한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선교의 길을 나섰다. 할머니 생각에 보따리장사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진심과 신앙은 통했다.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할머니를 찾아왔던 총각 하나가 오히려 교리문답을 읽고 마을의 두 번째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다. 당시 할머니가 할 줄 아는 기도는 성호긋기와 묵주기도뿐이었다. 아픈 이웃이 있어도, 궂은 일이 있어도 찾아가 성호를 긋고 묵주기도를 했다.
“집에 와서 걱정이 태산인거야. 내가 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기도가 있는데 빠뜨린 것인지….”
할머니의 정성과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아픈 이웃들이 하나둘씩 나아 한꺼번에 8가구가 신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할머니는 20리를 걸어 괴산본당에 찾아가 이들을 세례 받게 했다.
할머니의 선교전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따리장사로 번 돈으로 국수 한 광주리를 삶아 아이들을 불러 먹인 것이다. 아이들은 국수를 먹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따라 했다.
“보따리 장사해서 남는 것이 없었어. 아이들 문답책, 성경, 기도서 사줘야 하지, 간식 먹여야 하지. 그런 아이들이 지금 시집, 장가가서 성가정 이루고 너무 잘 살아.”
1958년 설립돼 잠시 폐쇄됐던 세평공소가 1976년 할머니와 여러 사람의 힘으로 다시 봉헌됐다. 할머니는 공소회장으로 그곳에서 거주하며 종을 치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교리를 가르쳤다.
“문답책을 외게 하고 몽둥이로 두드려주면서 가르친 덕분에 ‘욕쟁이 할머니’가 됐지. 그래도 아이들이 신자가 되니까 글쎄,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거야. 그렇게,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천주교를 믿게 됐어.”
주일마다 이웃들과 성당으로 향하는 20리 동안 산짐승이 저벅저벅 따라온 일, 가르친 아이 중 하나가 성소를 받아 사제서품을 받은 일, 유방임파선염을 앓아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지만 기도를 통해 수술이 잘 된 일 등 할머니의 반세기는 천주교와 함께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 보따리를 이고 집집마다 찾아가 전교를 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가 일구어 놓은 신앙의 밭에는 지금 곡식이 풍성히 영글었다.
세평공소(회장 도성기 필립보)가 마을의 중심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고 주민들은 신앙생활에 열심이다. 세평리 구역에 5개의 반이 생겨났고 각 반장들은 할머니의 역할을 이어 충실히 마을 사람들과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보따리장사 대신 비누를 만들어 세평공소를 키워가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아직도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를 올리고 묵주기도 40단을 바치고, 구 신약성경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공소예절 중 강론도 한다.
“나는 이제 바라는 게 없어. 사흘만 앓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거. 그냥 편하게 가려고 하면 안 되니까 딱 사흘만 앓을래. 아, 그리고 사람들이 청주, 충주 대도시로 다 떠나가는데 내가 없어도 세평공소를 누가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 그것뿐이야.”
사진설명
충북 괴산군 불정면 세평리 마을 주민을 모두 천주교 신자로 만든 전근 할머니는 틈만 나면 세평공소를 드나들며 기도한다. 세평공소는 이제 마을의 중심, 주민들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10년 전까지 전할머니가 기록했던 선교 대장. 여기에는 그동안 할머니가 입교시킨 영세자를 비롯해 대세자, 견진자 명단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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