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대화, 협력으로 교회 일치 앞장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개신교와 대화 물꼬 트고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 통해 불신의 벽 허물어
새해 첫 달을 보내는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는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하면서도 서로 갈라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이다. 일치기도 주간이 시작되는 1월 18일은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주교좌를 정한 기념일이고, 기도 주간이 끝나는 25일은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이다. 역사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발판으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사도 바오로가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였다는 점에서 일치기도 주간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올해 일치기도 주간은 이런 상징적인 면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방인들의 사도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노력한 바오로 사도의 탄생 2000돌을 기념해 특별희년으로 선포된 ‘바오로의 해(Pauline Year)’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21)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야말로 ‘바오로의 해’를 맞아 믿는 이들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 교회들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살펴보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되새기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일치를 향한 흐름
보편교회가 교회일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들어 1869년 교황 비오 9세가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하고, 교황 레오 13세(1878~1903 재위)가 동방교회를 일컫던 ‘이교자(schisma)’와 프로테스탄트를 칭하던 ‘이단자(haeresia)’를 ‘갈라진 형제’로 바꾸고 갈라진 형제들과 화해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를 시작하면서였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가톨릭교회가 개신교와 본격적인 대화에 나선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1964, Unitatis Redintegratio)을 통해 교회론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림으로써 일치운동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이후다. 일치교령은 통교(通交)로써 교회의 개념을 제시, 가톨릭과 개신교가 세례로써 통교를 이루고 있어 일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교리적 근거를 마련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며 본격화된 일치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동방정교회 수장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를 방문함으로써 신기원을 이룩했으며 이듬해 12월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취소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79년에는 가톨릭-정교회 대화위원회를 구성해 신학적 대화를 시작했다.
개신교와의 대화는 1967년 복음과 교회를 주제로 한 신학 대화에서 시작돼 1972년 ‘말타 보고서’가 발표됐고 1973년에 ‘루터교-가톨릭 합동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성체성사, 교회직무, 교회일치 등 교리 문제 외에 사목문제도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성체성사, 주교직에 대한 보고서, 198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450주년과 1983년 루터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공동선언문 등을 발표하며 역사적 반목과 불신의 벽을 허물어 왔다.
교황청은 이 외에도 개혁교회 세계연맹, 세계감리교협의회, 오순절교회, 침례교 등 개신교 각 교파들과도 대화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며 그 결실을 각종 문헌으로 작성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대희년을 앞둔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톨릭교회와 루터교세계연맹은 함께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The Joint Declaration of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을 발표함으로써 지난 450여 년간 두 교회 사이에 이어져 온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교회일치를 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지난 2006년 7월 23일에는 감리교 대표들을 비롯해 성공회 루터교 등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와 루터교세계연맹과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이 이뤄져 가톨릭과 루터교간의 ‘의화교리 공동선언’에 감리교가 동참함으로써 하나의 신앙, 하나의 교회를 향한 이정표를 세웠다.
교회일치 전망
세계적 차원에서 가톨릭교회와 루터교, 개혁교회, 성공회, 침례교 등 교파 대 교파 간의 신학적 대화는 30년 이상 이어져오고 있으며, 다자간 대화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함께 선교하고 함께 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감으로써 개신교와의 일치운동이 어떻게 열매 맺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새로운 세기를 전후해 가톨릭교회와 루터교세계연맹, 그리고 세계감리교협의회간에 이뤄진 선언은 몇몇 교회 차원에 머물던 교리의 공유를 타 그리스도교로까지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줌으로써 하나의 신앙을 통한 교회일치운동에 가속제가 되고 있다. 아울러 교회일치운동이 ‘다자’로 확장되고 있다는 대화의 양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장로교 등 타 그리스도교와도 대화의 새로운 전망이 나올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보편교회의 일치운동을 이끌고 있는 교황청 일치평의회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루터교, 감리교와의 공동선언은 대화 채널의 양적인 확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일치운동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보편교회는 앞으로도 타 그리스도교들과 함께 일치를 위해 더 많은 난제를 풀어가야 하지만 일치 회복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의 자세와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에 만난 사람
■KNCC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 김광준 신부
“일치기도회 활성화로 반쪽 신앙 되찾아야”
“그리스도인들이 한 믿음을 지니고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분열된 상태에서 성가정, 평화, 통일, 사회통합 등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나누고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를 비롯해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한국정교회 등 8개 교단이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으로 개신교계의 교회일치운동을 이끌고 있는 김광준 신부(대한성공회 교무원장)는 “일치운동은 교회의 미래를 위한 본질적 요구”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와는 상관없이 서양에서 비롯된 분열을 신앙의 유산인 양 당연하게 받아들여 반목했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있는 일치운동의 흐름을 교회일치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의 확산으로 평가한 김신부는 이런 인식이 삶의 현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일치의 필요성을 단순히 신학적 문제만으로 치환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교회 차원에서 거둔 성과들을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면서 우리나라 상황에 적응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과 비교해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김신부의 평가는 단호하기까지 하다.
“세계적으로 교회일치를 위한 움직임은 정의, 평화, 가난, 폭력 극복 등 다양한 삶의 문제로 의제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무관심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김신부는 파트너십의 강화를 제시한다.
“일치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대화는 파트너가 있어야 융성해집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 차원에서 대화 구조를 확보하고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각 교단 지도층을 중심으로 이뤄져오고 있는 교회일치를 위한 모색들을 교회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지역사회를 바탕으로 한 교구나 본당 및 개별교회 단위까지 일상화시켜야 한다는 게 김신부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를 대화의 출발점이자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갈라져있는 그리스도교를 하나로 이뤄 반쪽 신앙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청하며 진솔한 대화를 위해 노력할 때 일치운동영성이 신자들의 마음에 자리잡을 것입니다.”
사진설명
▶‘가톨릭교회·루터교 세계연맹,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이 2006년 7월 23일 한국에서 공포됐다. 이 행사에는 가톨릭교회를 대표해 김수환 추기경과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참석했으며, 각 종단 대표들은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가톨릭과 루터교가 1999년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의화공동선언에 서명해 500년 동안 계속돼 온 갈등을 풀고 교회일치의 초석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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