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은 모두의 '몫'
함께 '희망' 키우죠
서울시가 올해부터 셋째 이후 자녀 가운데 72개월 이하인 영·유아를 둔 가정에 매달 10만 원의 양육비나 보육시설 이용료의 50%를 지원하기로 했다. 일선 본당에서도 셋째 자녀를 출산할 경우 일정액을 가정에 지급하는 등 사회적으로 영·유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유아는 나라의 미래’라는 문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서울 가락동본당(주임 박노헌 신부)에서 운영하는 영·유아 생활시설 ‘해뜨는 집’을 찾았다.
#작전
1월 4일 오전 ‘해뜨는 집’(지도 도아녜스 수녀)으로 향하는 길. 왠지 모를 자신감에 충만했다. 영·유아를 돌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일. 그러나 갓 돌이 지난 아기 아빠로서 그간의 경험을 활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아기가 울 땐 관심거리를 찾아주고 졸릴 땐 동요 불러주고…’ 혼자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해뜨는 집 문 앞에 다다랐다. 일반 보육시설과는 달리 양옥주택으로 가정집들 틈에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현판을 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집에서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힘차게 문을 열었다.
#탐색전
“안녕하세요~” 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자 한 아이가 넘어질 듯이 뛰어 나왔다. “찬미야~ 이리와 옷 입어야지!” 그 소리에 다시 후다닥 되돌아갔다.
이내 자원봉사자 이혜원(45)씨가 나왔다. “오셨어요.” “네. 저기 하루 체험하려고…” 방쪽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잠시만요.”
방쪽을 살짝 들여다보니 전쟁터였다. 아이들이 저마다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씨가 말했다. “일단 손부터 씻으세요.”
화장실 문을 열었다. 한 여자아이가 변기에 앉아 울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아줬다.
“똥을 못 싸서 그래요.” 이씨가 어느새 아이를 안고 돌아섰다. 그를 따라 방으로 진입(?)했다. 옷 입기 싫다 울고,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울고, 온통 울음 바다였다. “오늘 병원가려고 해요. 4명이나 감기에 걸려서요.”
봉사자들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일순간 조용해졌다. 빨리 친해져야 하는데 시작부터 아이들과 떨어지게 됐다.
#전면전
자원봉사자 김란희(49)씨가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저는 뭐 할까요.” “방에 애기들 남았죠? 애기들이랑 좀 놀아주세요.”
방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남은 아기는 2명. 8개월 된 동훈이와 15개월 된 건하였다. 동훈이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건하는 텔레비전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걷지 못하는 동훈이가 접영 하듯이 기어왔다. 품에 안았다. 이내 동훈이가 또 다시 쳐다봤다. “아저씨 첨보지? 오늘 하루 잘 지내자~” 토닥토닥 두드리며 보듬었다.
어느새 건하가 장난감을 들고 다가왔다. 이건 놀자는 뜻이 분명했다. 한꺼번에 두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곧 겪게 될 일이라는 생각에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건하야. 배는 바다에서 다니는 거야.” 건하가 자동차 소리를 내며 배를 움직였다. 그때 김씨가 젖병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하나는 건하에게 하나는 나에게 전달됐다. “젖 먹일 줄 아세요? 이거 동훈이 먹이시면 되요.”
걸을 줄 아는 건하는 이미 젖병을 물고 걸어 다니며 먹고 있었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동훈이에게 분유를 먹였다. 그 사이 건하가 자꾸 괴롭혔다.
“건하야, 동훈이 다 먹으면 놀아줄게.” 알아들었는지 한 켠에서 누워 조용히 분유를 먹는 건하. 조용하다 싶어 내려다보았더니 동훈이가 젖병을 물고 자고 있었다.
힘을 조금씩 주어가며 젖꼭지를 뺐다. 침대에 눕히자 건하가 빈 젖병 두 개를 들고 김씨에게 가져갔다.
“동훈이 자네요?” “네. 분유 먹다 잠들었어요.” “아기 잘 보시네요.” 말하면 일을 더 시켜주겠다 싶어 “저도 돌 지난 아기가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봉사자들도 ‘애아빠’란 말에 마음을 놓은 듯 했다. 다른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갓 태어난 영아들이 있었다.
“베트남 여성의 아이들이에요. 이 녀석들도 지금 분유 먹을 시간이에요.” 분유를 먹이며 건하를 봤다. 입주위가 더러웠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주자 동훈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제가 갈께요.” 잠에서 깬 동훈이가 눈에 익었는지 울지 않고 안겼다.
그 사이 마루가 시끄러워졌다. 병원 간 아이들이 돌아왔다. 똥을 못싸 울던 15개월 된 은정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혼혈인 찬미는 신발을 벗겨달라고 했다.
그렇게 울던 녀석들이 이제 눈에 들어왔는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살가운 웃음을 짓고 장난을 치자 저마다 다가왔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쑤어온 죽을 유아들에게 먹였다. 한켠에 찬미와 앉았다. 떠주려 하자 숟가락을 뺐는다. 혼자 먹겠다는 표시다. 죽을 먹는 유아들을 담으려 카메라를 들었다.
먹다말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카메라와 수첩을 보자 자리를 잡는다. 계획에도 없던 수업시간이 잡혔다. “자. 요기 누르니까 찬미 얼굴 나오지?” “건하야. 여기다 쓰세요. 아저씨가 펜 줬잖아.”
정신없이 놀다 흠칫 놀랬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란 단어대신 ‘아빠’란 단어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한 자원봉사자가 말했다. “집에서 버릇돼서 그래요. 애들도 아빠라 부를지 몰라요.” 어느새 녀석들이 졸기 시작했다. 한 명이 자니 다들 따라잤다. 어느덧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퇴각
해뜨는 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오후 6시에는 주로 고등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했다.
떠나려 할 때쯤 해뜨는 집 지도 도수녀가 말했다. “각 본당에 그룹홈 형식으로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사랑 실천을 교회에서 해야죠.”
문을 나서려 하자 찬미가 뛰어와 배꼽인사를 했다. 녀석을 따라 배꼽인사로 답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환한 웃음으로 맞아줬다. 해뜨는 집의 유아들과 아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따뜻한 사랑을 기다립니다
해뜨는 집이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뜨는 집은 서울 가락동본당(주임 박노헌 신부)에서 운영하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영·유아 생활시설로 1999년 개설됐습니다.
무료시설인 이곳의 이용대상은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일시적인 보호가 필요한 0~2세의 아이로 이주노동자나 미혼모, 경제사정이 어려운 가정의 영·유아가 대부분입니다. 영·유아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라면 무엇이든 후원 가능합니다.
※도움주실 분 송파신협 01302-12-000999 해뜨는 집, 상담 011-9059-7329(실장 최선이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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