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젠에 머무는 동안 일행들과 찾은 빈민촌의 가정도 방문했었습니다. 그중 한 가정은 식구가 여섯명인데, 아내와 아이들까지 다섯명이 하루 12시간 이상씩 골방에서 일을 하지만 하루 수입은 모두 겨우 2달러라고 말하더군요.
그돈은 가족들의 하루 빵값도 안되는 임금이었어요. 가족 가운데 한 딸아이는 난롯불에 심하게 데어 팔이 썩어들어가고 있었지만 치료를 받을 엄두조차 못내고 있었습니다. 그 옆집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했어요.
인간의 생활이라 하기에는 너무 혹독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저는 아무런 말도, 위로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아제르바이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유 가스 보유국이라고 하는데요, 국민의 60% 정도는 이같은 난민이라고 합니다. 특히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의 수명은 평균 5세를 넘기기가 힘들다고 현지 구호단체 측에서 설명하는데 정말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일주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을 만났어요. 질병과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 희귀병, 정신지체 등을 앓고 있는 여러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숙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몸이 불편해도 자신들이 얼마나, 왜 불편한 것인지 모르고 살아요. 하루에 단 한끼를 먹으면서도 그것도 겨우 빵 한조각으로 떼우면서도, 그것마저 식당에서 아끼고 아끼고 먹다가 남기고 교실로 가져가 몸이 너무 힘들어 식당으로 내려오지 못한 친구들과 나눠 먹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 그순간 마치 각본에 짜여진 아주 슬프게 눈물나는 인도주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어요. 반성을 넘어서 제 내면에서도 제 자신에 대한 괴리감마저 느꼈습니다.
“내가 이들 보다 잘난 것이 무엇일까?”
서너살부터 열다섯살까지의 아이들은 정부의 기초적인 도움을 받다지만 이들의 형편은 쓰고 또 쓰고도 삶지 않고 또 쓰는 행주의 처지와도 같은 수준으로 보였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저는 알레르기와 중이염 등을 앓았어요. 편안한 곳에 와서 왜 나는 작은 병치레를 하는 것일까? 잠깐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은 그들과 함께 아파하라고,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나누라는 의미에서 내가 아프도록 하셨는가 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들과 이렇게 고통을 나눌 수 있게 해주신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에 기억을 더해서 살겠습니다. 저는 너무 작고 못난, 그래서 사람입니다. 이 마지막 순간과 오늘 이 기억들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돌아와서는 1개월에 2만원이면 아제르바이젠 한가정에 한달 생활비를 전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매달 후원금을 보내기로 했어요.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작은 실천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실천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