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님 안녕하세요~. 전 세실리아라고 합니다.” “학사님??? %$#!!”
제가 아는 선배 중에 한 분, 아주 짓궂고 재미난 분이 계십니다. 말년 병장 시절 서울 출신의 신병이 한 명 들어왔는데 누나 사진을 보니 무척 예쁘더랍니다. 그래서 신학생인 신분을 속이고 그 친구를 붙잡고 회유와 협박(?)을 해서 그 누나랑 만남을 주선받게 됐다고 합니다. 그 시절 다 그렇듯이 다방에 앉아서 작업을 걸려고 한창 분위기를 잡으려는데 그 누나가 하는 첫 마디가 “학사님….”이었답니다. 그 다음은 안 봐도 뻔하겠지요~.
신병 출현
제가 병사로 있던 시절에 부대로 새로 전입 오는 신병들을 은어로 ‘보급품’이라고 불렀습니다. 새로운 일이 잘 없는 군대에서 보급품이라 불리는 신병의 등장은 선임병들에게 신나는 일이었지요.
단순히 부대에 부족한 일손을 채우고 근무 덜 서는 것 외에도 신병의 출현은 그 자체로 부대의 활력이었답니다. 너나없이 신병을 곁에 두고 싶어 합니다. 따끈따끈한 사회 이야기도 듣고 그럴싸한 연애사도 듣고 혹시나 이쁜 여동생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다들 눈을 반짝이지요.
신병 보는 즐거움
군종사제로 군대 와서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주일에 미사 하는 거랑 월요일에 놀러 가는 거 말고는 인격지도입니다.
기존의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드물고 주로 새로 전입 오는 신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많습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신병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군생활의 의미
“여러분 이등병 생활이 힘들까요? 힘들지 않을까요?”
이 뻔한 질문 앞에서 신병들은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힘듭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신병들에게 “군생활, 그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야!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가! 다치지 말고 몸성히 2년만 버티는 거야~”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이등병 생활 힘든 건 당연하지. 하지만 그 생활을 통해서 뭔가 얻을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규율과 질서
“어딜 가든지 여러분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
제가 보기에 군생활의 전부는 훈련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전쟁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인 것 같습니다.
병사들에게 군에서의 단체 생활은 삶을 새롭게 경험하는 계기가 됩니다.
늘 혼자만 살던 외아들 생활과, 또래 간 경쟁을 목표로 하는 학창시절 인간관계랑은 다르게 군 생활은 병사들에게 함께 사는 법을 체득하게 해줍니다.
어려운 상하 관계와 규율 속에서 병사들은 아픔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같이 사는 방법, 자리와 질서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수월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인격 지도의 주된 내용입니다.
화합하며 사는 법
“특별히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원수지지 않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아무리 잘해줘도 정이 들지 않는 ‘김상병’, ‘오병장’은 영원히 여러분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 거기에도 ‘김상병’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군 생활의 가장 중요한 숙제 아닐까요?”
먹는 것에 약하다(?)
처음에는 교육 전에 초코파이와 콜라를 나눠줬는데, 자꾸만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이제는 교육 다 끝나야 간식 줍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해도 역시나 군인들은 먹는 것에 약한 게 사실입니다.
오정형 신부(군종교구 성레오본당 주임)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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