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 함께 하시니 행복합니다
군포지역 폐차장 뒷골목, 문을 닫은 조그마한 지하다방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목소리가 있었다. 필리핀 노동자들로 이뤄진 군포공동체. 그곳의 토요일 밤 모습은 이러하다.
1월 12일 토요일. 겨울이라 해는 일찌감치 저물었다.
저녁 7시가 되자 삼삼오오 모여드는 군포지역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잠든 아이를 업은 채로, 눈망울이 예쁜 딸의 손을 잡은 채로 모여드는 얼굴이 어슴푸레한 어둠속에서도 해맑다.
이곳은 군포공동체다. 처음부터 딱히 이름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공동체를 관할하는 수원 이주노동자사목센터의 편의상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둘째 주 토요일마다 자신들의 일터와 가정 등을 순회하며 성모상을 놓고 묵주기도를 바친 후 미사를 봉헌한다. 그러다보니 성모상이 순회하는 곳은 정비공장, 재봉공장, 시장 안 가게 등 특별한 곳들뿐이다.
지하다방에 성모님을 모시고
오늘 성모상이 돌아온 곳은 한 노동자가 일하는 슈퍼마켓 건물의 지하다방이다. 다행히 다방이 폐업해 요즘은 계속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추위를 피해 들어왔다고 하지만 지하다방의 공기는 더 차다. 얼룩진 벽과 거꾸로 붙어있는 차림표, 빛바랜 벽지, 떨어진 소파, 문이 떨어진 싱크대, 티 테이블은 오늘 공동체가 가진 전부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벽에는 커튼을 둘러놓고 작은 탁자에는 천을 둘러 제대를 만들었다. 그곳에 분홍색 초 하나를 켜고 성모상을 올려놓는다.
“인 더 네임오브더 파더, 오브더 썬, 오브 더 홀리스피릿, 에이멘.(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엄마 등에 업힌 작은 아이가 묵주를 매만졌다. 동방박사들이 마구간에서 예수를 만났듯 찬기가 가득한 낡은 다방 안에서 그들은 예수를 봤다.
군포공동체가 생겨난 것은 2년 전이다. 이 지역 필리핀 노동자들이 뭉쳐 나눔의 자리를 갖던 것을 보고 인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유피 수녀가 이들을 신앙공동체로 묶어냈다.
하지만 미사를 봉헌해줄 사람이 없어 근심하던 차에 수원 이주노동자사목센터 담당 최병조 신부가 나선 것이다. 현재 유피 수녀는 필리핀으로 떠났고 에스더 수녀가 군포공동체를 돌보고 있다.
에스더 수녀는 “영어, 필리핀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미사를 봉헌할 때 정말 감동스럽다”며 “‘사장님이 야근시켜요’하며 토요일 밤 미사에 오지 못할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더 어려운 이웃 위해 가진 것 나눠
공동체는 2년 동안 선행도 실천했다. 봉헌금을 거둬 어려운 노동자들을 돌봐주고, 필리핀에 태풍과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는 구호금을 보냈다.
특히 화산폭발 때 보여준 군포공동체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자신들의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모은 구호금만 100만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밤 9시. 어느덧 미사가 시작됐다.
천으로 덮은 티 테이블 제대에 십자고상과 미사경본이 올라왔다. 지금 막 일터에서 돌아온 노동자들이 다방 안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기타를 들고 필리핀말로 힘차게 성가를 부른다.
낡은 지하다방. 그 낮은 곳에 예수님이 임했다. 얼룩진 벽, 먼지 쌓인 탁자, 문 떨어진 싱크대 위에도 그분이 계시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차가운 공기와 지친 하루의 피로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군포 필리핀 노동자들의 토요일 밤은 그 어느 곳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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