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4일, 어릴 적부터의 꿈을 이루어 사제가 되었다.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부임한 첫 본당은 조금만 나가면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고, 본당으로서도 보좌신부는 처음이었기에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사제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 신부님’을 만난 어린이들은 장난을 걸며 친근하게 다가왔고, 거의 200명의 어린이들이 아우성을 치는 ‘우리들의 미사’는 시끄럽지만 경이로운 ‘우리들의 축제’였다.
대부분의 사제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그렇게 사제로서의 사목 생활을 시작했다.
겨울이 되었을 때 주임신부님께서 특별한 제안을 하셨다. “아이들 데리고 스키장에 한 번 가보지.” “예? 스키장이요? 저는 한 번도….” 지금은 많은 이에게 익숙한 곳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스키장은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선 특별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신청을 받아 2박3일 일정의 스키 교실을 시작했다. 스키를 신고 눈 위에 서니 아이들이나 나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함께 걸음마를 배우고 넘어지는 연습을 하면서 정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키장의 낭만과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린 친구들은 금방 자세를 익히고는 리프트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활강을 시작했고, 운동 신경이 무딘 나는 여전히 밑에서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스키장 전체를 울리는 방송, “00성당에서 오신 인솔자는 지금 즉시 병원으로 와 주십시오.”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구내병원으로 갔다. 아뿔싸! 거기에는 우리 아이 한명이 다리가 부러져 울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 중대한 위험을 감지했다. 아이를 구급차에 태워 큰 병원으로 후송하고 주임신부님께 상황을 보고했더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걱정하지 말고 계속 일정을 진행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아이들은 더 빠르게 더 높이 올라가 신나게 스키를 타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밑에서 걸음마를 하고 있을 때 다시 들리는 방송, “00성당에서 오신 인솔자는 즉시 병원으로 오세요.” 이 무슨 날벼락.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더니 걱정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두 명이 동시에….
아픔을 참지 못해 울고 있는 아이들을 애써 달래고는 큰 병원으로 보낸 뒤 다시 주임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주임신부님도 어이없어 하셨지만 그래도 일정은 끝까지 소화하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 다시 들리는 저승사자의 목소리 같은 방송, “00성당에서 오신 인솔자께서는….” 그 다음은 모른다. 하늘은 노랗고 흰 눈은 검게 보였다. 그렇게 네 번째 아이를 병원으로 보내고 난 후 주임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알겠네.” 이번에는 주임신부님도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니 젊은 신부가 상처 입었을까봐 상심해 하는 나를 오히려 부모님들이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한동안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겨울의 추억과 낭만을 심어주려던 획기적인 시도는 이렇게 악몽으로 끝났다. 역시 사목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준 호된 체험이었다.
신호철 신부 (춘천교구 청평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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