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군종교구 전체모임 시간에 육군 비룡성당의 김태진 신부님이 성서쓰기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일 년 동안 신약성서 전체를 필사해오면 금으로 만든 묵주반지를 선물하겠다고 했더니 열댓 명의 병사들이 틈틈이 성서를 써서 신약성서를 완필했다는 겁니다.
해병 성토대회(?)
‘우와~ 멋지다…. 많은 신자들이 이러저러한 핑계로 엄두도 못내는 성서필사를 병사들이 해 내다니…. 나도 그러한 병사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과 시기 질투(?)의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모임이 끝난 바로 그 주간 본당 주일미사 때 그 이야기를 전하며 해병성토대회(?)를 벌였지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너희들이 보기에 군기 빠졌다고 얕잡아 보는 육군들은 성당에서 그런 열정을 보이는데, 최고의 해병이라고 하는 너희는 뭐냐? 겉멋만 잔뜩 든 껍데기가 아니냐? 너희들 중에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 해병이 있느냐? 미사 시간에는 딴청부리기 일쑤고, 읽으라고 나눠준 성경책은 고이 모셔 놓는 장식품 아니더냐?” 등등의 말로 자존심을 팍팍 건드리며 강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석이 벌떡 일어나 “신부님! 비교하지 마십시오. 기분 나쁩니다.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그렇게 우습게보지 마십시오!”라고 대드는 겁니다.
“뭐라고? 너희들도 할 수 있다고? 그래? 좋다. 그럼 너희도 한 번 해봐라. 성탄 때까지 복음서 네 권을 완필하면 나도 금 묵주반지를 해주마.” 그리고 한 번 더 자존심을 건드렸지요. “너희들 중에 제물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처럼 금반지가 탐나서 성경필사를 하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놈들은 분명 여러 명이 나눠 쓰거나 혹은 후임병을 시켜서 쓸 것이다. 그래서 매주 검사를 하겠다. 매 주일 신부님의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신부님 사인이 없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 다음 주부터 스무 명 정도의 녀석들이 미사 전후로 수단 자락을 붙잡으며 사인해 달라고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팬 사인회에 나온 연예인의 기분에 견주겠습니까? 제 자신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한 명 한 명 갖은 정성이 담긴 필사성서를 검사하며 한 두줄 격려의 글을 써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찢어진 성경 낱장과 너덜너덜해진 종이 대여섯 장을 내미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며 머리털이 일어섰습니다.
“이, 이, 이런…. 성경을 찢다니… 네 이노오~옴!!”
한바탕 큰소리를 치고 나서 왜 성경을 찢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못된 놈이 “저… 성경 쓸 시간이 없어서 전투복 윗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겁니다.
성의 없이 보였던 너덜너덜한 종이들을 자세히 보니 성경 크기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접혀있었고, 연필로 깨알같이 필사한 성서구절들은 또박또박 정성이 담겨있었습니다.
말씀과 함께 하는 기쁨
부대에서 제일 바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일병 계급장이 보였습니다. 코끝이 찡해지고, 눈앞이 어른거려 얼른 필사본으로 고개를 파묻었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라는 내용의 격려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궁둥이를 툭툭 쳐주며 “성경 열권 찢어도 좋으니 열심히 써봐.”라고 말해주었지요.
한 달 동안 열일곱 명의 녀석이 복음서 네 권을 완필해서 아기 예수님 생일 선물로 구유옆에 가지런히 봉헌했습니다. 성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열심히 쓰고 있는 녀석들이 열 명 정도가 있습니다.
미사 때 영성체시간마다 왼손 약지에서 반짝거리는 묵주반지를 봅니다. 약지에 묵주반지를 끼고 어떻게 묵주기도를 하는지 또 하나의 신비이지만, 불가능을 모르는 해병들이니 어떻게든 묵주기도를 하겠지요.
그런데 초코파이 하나도 아쉬운 군대 성당에서 금 묵주반지를 어떻게 해결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시다구요?
“에이~ 온 세상 모든 것이 우리 아버지 것인데, 금 묵주반지 몇 개정도 해결 못 해주신다면 말이 됩니까? 우리 아부지한테 이쁜 일로 떼쓰면 다 이뤄주십니다요. ㅋㅋㅋ”
김준래 신부(군종교구 충무대본당 주임)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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