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웃는다
한국교회 나눔에 ‘살 길’ 열려
검은 땅에 삶의 희망이 움튼다
지난해 초 아프리카 시에라리온(Republic of Sierra Leone) 이상원 신부(가시미로, 47, The Augustisian Recollests)의 사목활동이 보도된 후 많은 신자분들께서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에 가톨릭신문은 시에라리온을 다시 방문(1월 7~27일), 한국 교회 신자들의 정성과 기도가 어떻게 열매 맺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이번 취재는 4인 가족 식사비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돈이 아프리카에선 인간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1년 전
1년 전 시에라리온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1991년부터 10년간의 내전으로 국가 기반시설은 대부분 파괴됐고, 땅은 황폐화 됐다. 수도인 프리타운을 포함해 시에라리온 전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호텔이나 관공서, 상점, 식당 등 전기가 필요한 곳에서는 모두 자체 발전기를 사용해야 했다.
물 사정도 마찬가지. 수도 프리타운을 제외한 대부분 농촌 지역이 극심한 가뭄으로 물 사정이 열악했다. 대부분 마을이 3~5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이들에게 한화 400만원이 소요되는 우물을 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아 사망률과 교육문제도 심각했다. 시에라리온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수는 대략 10~12명. 하지만 그 아기 중 5~6명이 말라리아, 장티푸스 및 각종 감염 질병에 의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었다. 마땅히 보낼 병원도 없고, 또 병원이 있다고 해도 병원까지 갈 차비 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교육받는 인구는 전체의 10%.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땅히 보낼 학교도 없고, 또 학교가 있다고 해도 학비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1년 학비는 한국 돈으로 약 2만원. 하지만 이 돈이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에 보낸다고 해도 노트와 필기도구를 살 돈이 없었다.
# 이제는 다르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이상원 신부는 작은 키에 짧게 깍은 머리, 단단한 근육, 까만 피부 등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많이 바빠졌습니다.” 이신부는 “지난해 가톨릭신문을 통해 시에라리온 상황이 소개된 후 한국 신자들의 도움이 이어지면서 해야 할 일이 부쩍 늘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1년간 5개 마을에 우물을 파주었고,(우물을 파는 비용은 한화로 약 400만원이 소요된다) 현재도 3개 마을에 우물을 파고 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지원을 받아 중고 경운기와 트랙터 3대를 구입, 농업 생산력 증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신부는 무엇보다도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만 해도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7만원(병원 입원비와 약값, 병원까지 가는 차비 포함. 시에라리온에서 교사 및 하급 공무원 평균 월급은 약 4~5만원이다)이 없어 살리지 못했다. 수도회에서 나오는 월 3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였던 이신부로서는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어도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원주민들은 이제 아프면 가장 먼저 이신부에게 달려온다. 한국 신자들이 시에라리온 원주민들에게 ‘살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신부는 또 아이들 교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년전만 해도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신부는 학업에 재능을 보이는 청소녀 100여 명을 선발, 연 5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고등학교 학비는 연 2만원에 불과하지만 딸이 학교에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일을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들을 위해 3만원 더 얹어 준다고 했다. 이신부는 앞으로 학업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을 별도로 선발, 외국 유학을 보낼 계획이다. 인재 양성이 시에라리온의 유일한 미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신자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가톨릭신문 보도 후 성금이 많이 답지 했지만 대부분 일회성 후원에 그쳤다. 월 1~2만원의 꾸준한 소액 후원이 절실한 시점. 후원금이 언제 바닥이 날지 모른다.
# 소녀는 하늘나라로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에서 7시간 동안 차로 이동, 이상원 신부 숙도에 도착했다. 이신부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과는 인연이 거의 없다. 한센병을 앓아 소록도에 살던 부모님은 모두 어릴 때 돌아가셨다. 이후 어린 나이에 필리핀으로 이주, 레골레토 수도회(스페인에 본원을 두고 있는 200년 전통의 수도회로, 아직 한국에는 진출하지는 않았다)에 입회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방문할 기회도 없었고 한국사람 만날 일은 더더욱 드물다.
짐을 풀기 무섭게 이신부에게 ‘레베카’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이신부와 함께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을 때, 핏기 없는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던 13세 예쁜 소녀의 얼굴이 기억에 또렷했다. 이신부가 소녀의 아버지에게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뭐하느냐”며 호통을 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신부가 한참동안 대답을 미룬다.
“그 아이, 기자님 한국으로 돌아간 후, 1주일 뒤에(2007년 5월 1일) 하늘나라로 갔어요.”
이상원 신부 선교 후원
신한은행 110-077-255287 이상원 신부
문의 011-377-0518 우광호 기자
사진설명
▶한국 신자들의 도움으로 새로 판 우물 앞에서 이상원 신부와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트랙터에 올라탄 이상원 신부와 마을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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